깡마른 여자(16)차가 과속방지턱을 지날 때 쿨렁거림이 덩달아 비닐봉지 안으로 전해져, 금붕어들이 요동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수족관의 잔잔한 물의 흐름을 경험하다가 거센 저항에 대한 대처는 아마 너무나 생소할 것이다. 어떻게 할 궁리도 없이 비닐봉지 안에서 서로의 몸을 부딪치며, 운명을 맡기는 다섯 마리 금붕어는 우로지 주차장에 정차하자 한숨을 돌렸을 게다. 꼭 수피아를 만난다는 확신은 애초부터 없었다. 혹시 그때처럼 남자사냥을 위해 벤치에 앉아있는 정도로, 예견하고 싶었다. 우로지의 석양은 호수에 배분된 햇살을 거둬가는 시점에서, 하늘과 산을 지워나가고 있었다. 저러다가 노을의 강한 기운으로 호수를 돌볼 새도 없이 하루의 마감을 여지없이 드러내었다. 어둠이 처리해야 될 몫이었다. 가로등이 켜지고 가을 끝동으로 이어지는 바람이 수런수런 된다면 저만치 옷깃을 여밀 것이다. 고독한자여, 지금 우로지로 나오라. 모든 처음과 시작은 이곳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오늘을 정리하고 내일을 기획하리라. 호수는 야행성 고기들로 바쁘게 부쩍 거리고 있었다. 수피아를 찾아 여기저기 발걸음을 옮겼다. 운이 좋으면 만날 수도 있겠지만, 허긴 만나는 것이 운이 좋은 게 아니라 운이 나빠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것저것 얽혀있는 상황과 관계가 또렷하게 정답이 구해지지 않는 것도, 불편했다. 다만 뭔가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야할 필요성은 분명했다. 그것이 악연이든 인연이든, 이렇게 찜찜한 채로 마무리를 짓고 싶진 않았다.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집으로 찾아가기에는 매몰차게 내몰렸던 자존심의 상처가 여태 아물지 않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약간 한기를 느꼈다. 마치 주전부리가 든 비닐봉지처럼 건성건성 들고 다니다가 호수가로 다가갔다. 수피아를 만나서 건네준다는 전제하에 금붕어를 샀지만 집으로 들고 들어갈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방생이 오늘의 심정을 대변할 것 같았다. 우로지 호수 안은 얼마나 강한 물고기들로 넘쳐날까. 일찌감치 토종물고기들이 자리 잡아 혹시나 외래종이 끼어들면 합심하여 호수 안의 서열을 정리하면서, 단단해진 덕분에 물결은 고요하게 흐르고 있지 않을까. 그전 수족관에서부터 비닐봉지 안까지, 큰 스트레스 없이 순탄한 삶이 전부였다면 지금 대단한 도전을 겪게 될 것이다. 어쩌면 지옥을 맛보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이겨내야 한다. 방생한 나를 원망하지 말고 이 자리에 없는 수피아를 원망해라. 절대 한 마리씩 흩어지지 말고 똘똘 뭉치며 다녀라. 한 마리는 작고 왜소하지만 다섯 마리가 무리지어 다니면 범접할 수 없는 강함으로 보일지 모른다. 큰 머리에 큰 눈과 큰 입을 앞세워라. 큰 지느러미와 큰 비늘과 큰 꼬리를 숨김없이 드러내라. 무엇보다 다섯 마리가 원을 그리며 방어 자세를 취한다면 메기도 가물치도 황소개구리도 쉽게 넘보지 않을 것이다. 금붕어의 역사를 바꿀 너희들은 영웅으로 남으리라. 감추었던 모난 성질도 드러내고, 도태된 목청도 돋우면서, 지느러미도 바짝 세워 육식성으로 거듭나라. 그것만이 살길이다. 그것만이 버텨낼 수 있는 타당성이다. 가라. 물이 더 차기 전에, 물이 어둠에 잠기기 전에, 물이 더 깊어지기 전에 간직해왔던 희망은 몸속 부레에 담아 상하이동이 더 원활하길 소망한다. 한꺼번에 호수에 금붕어를 쏟았다. 혹시나 한 마리씩 떼서 넣으면 서로의 반응으로 일치가 되지 않아 뿔뿔이 흩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로, 놀람도 설렘도 적응도 한통속이 되라는 배려가 담겨있었다. 밤비행기가 머리위에서 날아갔다. 호수의 물결이 원을 그리며 일렁이다가 곧 잠잠해졌다. 왠지 노곤하게 하품이 나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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