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여자(17)두 번 더 금붕어 다섯 마리씩 사와서 호수에 방생해 주었다. 처음 수피아를 만났던 야외벤치보다 넓은 의미에서 기웃거려 보았지만, 여전히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애꿎은 가을만 끝자락에 닿아 있었다. 마치 가을이 끝나기 전에 만나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더욱 채근하고 있었다. 언제 적 침엽수 잎인지 알 수 없지만 이미 색이 바래져 길섶에 나뒹굴고, 그 위를 활엽수 낙엽들이 뒤덮고 있었다. 조용하면서 엄격한 자연의 순리는 모든 사물들에게 적용되어 하나같이 해가 뜨고 지는 이치와 맞닿아 있었다. 새삼 놀랍고 신기했다. 호수 속은 짐작할 수 없겠지만 열다섯 마리의 금붕어를 방생했다. 수족관에서 거침없는 놈들만 골라 샀으니 틀림없이 제 몫을 한다고 믿고 싶었다. 수족관과 비교도 안 될, 크고 넓은 호수지만 귀신같이 동족을 찾아 똘똘 뭉쳐 큰 힘이 되길 소망했다. 갈대가 바람결로 누웠다. 바람도 누운 갈대가 고마워 곁을 허락하고 더 머물다 가는 것처럼 보였다. 빗살무늬 저녁햇살이 우로지 호수를 덮은 날, 이쯤에서 금붕어를 포기하고 털레털레 호수 주변을 서성거렸다. 수피아를 놓아줘야 할 것도 같았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데, 한 쪽만 바라보는 바라기는 한쪽 목만 뻣뻣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이에 맞는 열정도 그다지 뜨겁지 않았다. 그냥 이러다가 만나면 좋고, 만나지 않아도 억울해 하지 않을 만큼 시큰둥해지는 저녁 무렵이었다. 삼삼오오 모여서 구호를 외치거나 잡담으로 시끌시끌 거리는 산책로에서 수피아를 보았다. 처음에는 환영처럼 현실감이 없었고, 노을빛에 어룽진 그 모습이 어찌나 영화처럼 강렬하게 파고드는지 어떻게 할 줄 몰라 허둥거리고 있었다. 수피아는 내게로 걸어왔다. 맹렬하게 만나고 싶었던 마음이 다시 꿈틀거렸다. 일 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멈춘 수피아를 보면서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혹시 이러다가 질식한다고 해도 기꺼이 이쪽을 선택할 것 같았다. 한 개의 빨간 능금을 쥐고 있는 수피아의 뺨은 한 움큼 노을을 뭉쳐놓은 것 같았다. 나를 의식했는지 잠깐 눈을 맞춘 수피아가 호수주변에서 자라는 갈대무리를 한손으로 쓰다듬었다.“언제 오셨나요?”우로지에 언제 와있었는지, 질문의 의도를 쉽게 파악하지 못한 대답을 하고 말았다. “오후부터 우로지를 산책했지. 벌써 저녁에 당도해 버렸네.”그러다가 허겁지겁 대답을 수정했다. “아, 단기일자리를 끝내고 열흘 되었나. 열흘쯤 된 것도 같군,” 능금을 쥐고 있던 손을 바꾸면서 비로소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눈빛은 다행히 부드러웠다. “핸번 알잖아요. 아저씬 휴대폰이 장식품인가요? 아니면 제가 관심 밖으로 밀려났나요? 그리고 집도 아시잖아요?” 그토록 수피아는 관심 안에서 팔딱거렸지만, 깔끔하지 못하고 징징댄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조심스럽게 맴돌았다는 소리는 차마 하지 못했다. 마흔 살이나 더 많아보면 조심스럽다는 생각과 표현조차도, 얼마나 부당하게 비춰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먼저 앞서게 된다. 그래서 가급적 안으로 삭히게 되는 주춤거림으로 가림막을 대신할 뿐이었다. 만약 수피아가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면, 내키지 않는 마음을 앞세워 머뭇머뭇 따라 나설 것이다. 빠릿빠릿한 걸음으로 따라붙지 못하는 내 마음을 읽은 표정으로, 그녀도 이해할 것이다. “오늘따라 혼자 집에 가기가 그러네요. 같이 가서 저녁 드실래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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