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여자(18)간절하게 수피아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우연을 가장하며 주변을 맴돌았던 계획이 너무 우습게 느껴졌다. 이렇게 쉽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그간의 노력을 하루 아침에 형편없이 만들어 보이는 모양새 같았다. 그래도 위안하자면 그런 노력들의 보이지 않는 기반을 둔 덕분에, 수피아가 열어준 현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이 되어졌다. 몇 달 전에 머문 집안 분위기와는 왠지 달라져 있다고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달라져 있다고 근육통까지 덩달아 찾아오고 있었다. 그렇게 내쫒을 때는 언제고 다시 허락한 자신이 무안했는지, 큰 동작으로 욕실 문을 열고 수피아가 사라졌다. 외출 후 곧바로 씻는 버릇은 여전한 것을 상기시켜 주듯, 수피아가 사라진 거실에서 두리번거렸다. 달라졌다고 생각되는 생경한 그 무엇에 대한 낌새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안정감이 있거나 툭 불거져 나오지 않는 거실 풍경이 이어진다면, 들어설 때부터 떨림은 노령으로 접어든 신호로 여기고 말 것이다. 그만큼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기에 무엇인가 꼭 찾고 싶었다. 마침내 거실 안쪽으로 시선이 닿았을 때 놀란 눈을 비비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봐도 사람 머리뼈가 버젓이 장식장 테이블위에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문득 우로지 벤치에서 들려주던 수피아의 행적이 생각났다. 지하실 통로를 벗어나 자호천 모래사장에서 맞닥뜨린 해골이, 현실감으로 장식장 테이블을 채우고 있다는 이 숨 막힘이 솔직히 주눅이 들었다. 그때 흘려버리듯 들려주던 이야기가 전부 사실이었고 조금은 불신한 마음들이 미안한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고 느껴졌다. 이승과 저승을 헤매는 가난한 영혼의 울림이 소름 돋듯, 그래서 나를 두드렸던가. 현관문이 열리자말자 드세게 멱살잡이라도 했단 말인가. 수피아의 이야기 속 해골의 주인은 이 집에서 살다가 해방과 더불어 야반도주하던 일본사람 누구이고, 그 와중에 상처입어서 짐이 되기 싫은 누구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집안으로 들여놓기엔 너무 심난한 상황이 불 보듯 뻔한 데 수피아의 선택은, 동거 쪽으로 가닥을 잡은 모양이었다. 약간은 사차원이라 생각이 되어졌지만 황당하고 놀라웠다. 거기다가 해골에 붙어있는 알 수 없는 기운이, 내게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기묘한 느낌으로 읽혀지고 있었다. 오줌이 마려운 듯 온몸이 떨려왔다.그때 수파아가 욕실에서 나왔다. 구원병을 만난 듯 내가 활짝 웃어 보였다. 덩달아 수피아도 활짝 웃으면서 알몸을 두르고 있던 큰 수건을 순간적으로 뗐다가 다시 몸을 감쌌다. 순간적인 동작하나가 왠지 서먹하고, 긴장하고, 불안했던 기분을 일순간 씻어버리고 있었다. 거기다가 해골에 대한 찝찝함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버렸다. 욕실에서 씻고 나왔을 때 소파에서 요염한 자세로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랬다. 한 때 정자와 난자의 만남과 착상을 서로 노력한 관계였다. 정신적인 일체가 모호해도 육체적인 물꼬가 닿는다면, 굳이 기우뚱거리거나 허접해도 좋다는 등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남녀관계는 본능적인 것만으로 하룻밤 만리장성도, 더 나가서 아이도 낳을 수 있다는 수피아는 기세등등하게 말없이 나와 포개졌다. 간혹 고개를 들면 장식장 테이블에 해골이 눈에 들어왔지만 수피아가 안아주는 악력이 모두를 평온하게 만들고 있었다. 얼마쯤 맹렬해졌고 얼마쯤 사근사근해졌다. 큰 장독을 흔들어주듯 수피아의 무게중심이 아래로 쏠려있었다. 곧 절실한 집중포화가 시작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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