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 城郭골화성(骨火城) : 신라 지증왕(智證王 437~514) 때 골화성 등 12개의 성을 쌓았다.(원문) 骨火城 新羅智證王時 築骨火等十二城금강성(金剛城) : 고을의 동쪽 5리 금강산에 있다. 신라 말에 영남의 여러 고을들이〔후 백제의〕 견훤(甄萱 867~935)300)에게 함락된 바가 되었는데, 금강성의 장군인 황보능장(皇甫能長)이 골화(骨火), 도동(道同) 등의 고을(縣)들을 수복하고는 〔금강산에〕 성을 쌓아 근거를 마련하자 이에 의지하여 많은 백성들이 안도하고 돌아왔다. 고려 태조가 나라를 세움에 이르러 〔고려에〕 귀부하였다. 오늘날 성터는 그 흔적이 남아있다.(원문) 金剛城 在郡東五里金剛山 新羅末 嶺南諸州 爲甄萱所陷 金剛城將軍皇甫能長 復骨火道同等縣 築城據之 一境賴安 民多歸之 及麗太祖立國歸附焉 今城址遺存영주성(永州城) : 남정원(南亭院)의 서쪽에 있다. 고려 고종 때 동경(東京)301)지역의 도적(盜賊)인 최산(崔山)과 이유(李儒)가 난리를 일으키자 왕이 이자성(李子晟)302) 을 보내 〔최산과 이유를〕 공격하도록 하였는데, 이자성은 여러 날을 쉬지 않고 달려 도착하여 영천성에 의지하여 〔지키고 있자니〕, 적들은 자성의 군대가 먼 곳으로부터 급히 왔다고 여겨 그들의 고단함을 이용하여 이를 공격하고자 고을의 남쪽 들판에 주둔하였다. 관군이 성위에 올라가 〔적의 동태를〕바라보고 자성에게 고해 말하기를 “우리 군사들이 더위를 무릅쓰고 멀리서 와 보니, 도적의 세력이 성하고 또 날카로워 가히 저들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니, 마땅히 성문을 닫고 군사들을 며칠 쉬게 한 뒤 저들과 더불어 싸우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라고 하자 자성은 말하기를 “그 계책은 옳지 못하다. 무릇 피곤한 군졸들이 쉬게 되면 더욱 나태해지게 되고, 여러 날을 오래 버티다보면 도적들이 우리의 실정을 알게 될 것이야. 〔그래서〕나는 다른 책략이 급히 공격하는 것만 같지 못할까 두렵다네” 하면서 성문을 열고 갑작스럽게 뛰쳐나가 도적들이 진영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사이에 분발하여 공격하니 〔적들이〕 크게 패주하여 넘어진 시체들이 수십 리에 〔이어졌다〕.(원문) 永州城 在南亭院西 高麗高宗時 東京賊崔山李儒作亂 王遣李子晟 往擊之 子晟倂日疾馳 據永州城 賊以爲子晟軍自遠急來 欲乘其勞 擊之屯南郊 官軍登城望之 告子晟曰 我軍冒熱遠來 賊勢盛 且銳鋒不可當 宜閉門休士 數日而與戰 子晟曰不可 凡疲卒休則愈怠 若曠日持久則賊得我情 恐生他變 不如急擊 遂開門突出 及賊未陣奮擊 大敗之 僵尸數十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