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1년 살 때니까 11년 전 일이다. 목동 형님 학원 앞 커피숍에서 ‘기억정치’를 다룬 사회학 서적에서 이런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선진사회는 고도로 분화되었기로 내란과 전쟁 같은 국가위기 사태는 발생하기 어려울 것이다.”나는 그때 이 글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아니지. 정쟁이 고도화된 대한민국 같은 나라에선 국가통수권자가 비상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지.’“고도로 분화됐다”는 말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뜻이겠다.어젯밤 나는 대구에서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접했다. 밤 11시 20분쯤이었다.서울 국회의 상황은 복잡하게 돌아가는 듯했다.나는 다관(茶館)에 들어앉아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정말이지 깜깜했다. 대전으로 가는 막차를 타러 일어나면서 1시간 전에 먼저 자리를 뜬 선배에게 전화를 넣었다.그 선배가 대통령의 계엄령선포 소식을 전해주었다. 정말 황당했던 것은 내란 소식을 접하기 불과 30분 전, 다관에서 전화로 서울지방경찰청장과 안부인사를 주고받은 일이었다.그러니까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기 10분 전 서울지방경찰청장도 이 사태에 관한 어떤 정보도 낌새도 없었던 것이다. 청장과는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을 뿐이다.“조만간 서울 갈 일이 있습니다.”“오시면 언제든 들러주세요.”하긴 비상계엄령의 속성이 원래 비밀엄수가 아닌가, 싶었다.비상이 걸린 건 아내였다. 대전정부청사도 바삐 돌아가는 듯한 메시지를 보내왔다. 고위공무원들은 새벽 1시까지 집결한다는 소식과 함께 시내에 군이 깔릴 것이란 내용도 전해왔다.나는 뉴스를 스크린하며 서울의 형님한테 전화를 넣었다. 집사람은 대구에서 못 올라오거나 밤 12시 넘어 대전에 도착해 불시검문으로 붙잡혀가는 상황을 우려했다. 우리에게 45년 전 있었던 비상계엄령의 이미지는 그런 상상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다.나는 아내에게 말했다.“오늘밤은 그런 일이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 서울 형님도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고 했다. 불시검문을 당하면 또 어떤가.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붙들려가겠는가. 또 붙들려간들 어쩌겠는가. 곧 풀려날 테니 이 또한 운명이려니 생각해야지. 문득 백범 김구 선생이 <백범일지>에 써놓은 글귀가 생각났다.김구 선생이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 순사한테 붙잡혀 밤새도록 고문을 당한 일이 있다. 그 경험을 김구 선생은 이리 써놓았다.“일본놈들이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니 나도 독립운동을 더 가열차게 해야겠다.” 나는 형님에게 말했다.“새 아침이 돼보면 알겠지. 어떤 세상이 돼 있을지.”나로서는 어제가 참 묘한 날이었다. 경북도문화관광공사(사장 김남일) 회의에 참석했다가 바로 옆 코모도호텔 ‘프레지던트룸(일명 박정희룸)’을 찾아 박정희 대통령이 앉았던 자리에 앉아 기념촬영도 하고, 창문 너머로 보문단지의 빼어난 풍경도 마음껏 감상한 운수 좋은 날이었다.경주에서 대구로 올 때는 같은 회의에 참석한 박재일(영남일보 논설실장) 선배님 차를 얻어 탔다. 한 40분 선배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왔다. 선배님은 회사로 곧장 가시고, 나는 2군사령부 맞은편 다관 부근에서 내렸다.내 보이차 스승 양보석 선생님이 계시는 ‘보석다관’으로 갔다. 거기서 2시간 차를 마신 뒤, 10분 거리의 대폿집으로 이동했다.“선생님, 조금 이따 다시 오겠습니다.” 1년에 한두 번 만나는 박성우(영남일보 경산담당) 선배님과 홍어삼합에 막걸리를 마셨다.조촐한 막걸리 회동을 마치고 선배님과 함께 다시 보석다관으로 갔다.거기서 3차를 시작했다. 영남일보 인사 소식을 접했다. 신임 변종현 편집국장께 차 한잔 우려드리고 싶어 밤 9시쯤 전화를 넣었다. 10시쯤 오겠다는 분이 10시 20분쯤 어렵겠다고 전화가 왔다. 그 시각즈음 변 선배님은 무슨 낌새를 차렸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기차 타고 올라오면서 했다.변 선배님까지 뵈었더라면 어제는 정말 운수 좋은 날이었을 텐데, 내 운은 거기서 그쳤다. 박성우 선배님이 먼저 자리를 뜨고 나는 1시간 더 선생님과 시간을 보냈다.세상 돌아가는 일은 몰라도 좋았던 시간이었다. 보이생차가 너무 맛있어 정신이 이리 말똥해 뜬눈으로 밤을 지샐 줄도 모르고 마시고 또 마셨다.45년 전의 계엄령을 나는 알지 못한다. 경험하지도 따로 깊게 들여다본 일도 없다. 그리고 어제 계엄령의 성격을 나는 잘 알지 못한다.다만 나는 대통령의 “종북 세력 척결, 헌정 질서 지키겠다”는 이 말은 지지한다.미국 백악관 발 “한국 정치분쟁, 평화적 해결 희망” 보도가 계엄령의 성격을 말해주는 게 아닌가 싶다.하지만 만사가 조롱과 희화화와 내로남불이 된 작금의 정치풍토는 내란 아니면 전쟁 둘 중 하나로밖에 청산되지 않는다.이래 망하나 저래 망하나 망하긴 매한가지다. 나는 그리 생각한다.그런데 새벽 4시, “국무회의를 거쳐 비상계엄을 해제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이 전해졌다.이 새벽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셨던 외할매 생전 말씀이 귓가를 쟁쟁 울린다. “에이, 지랄것들 요도발동을 해쌌네.” 후과를 어찌 감당하려나./심보통 202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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