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되찾은 영천문화유산 조선 1707년 ‘영락풍아’- 함계 정석달 필사원고본- ‘영일정씨’ 전시회 12월 17일 공개- 영천역사박물관 제2전시관 ‘영천읍성전시관’ 관람가능함계선생의 본관은 영일(迎日·오천)이며 호수 정세아선생의 현손이다. 갈암 이현일의 제자로서 인품과 덕망이 높았으며, 병애 조선장 · 甁窩(병와) 李衡祥(이형상)과 학문을 강론하면서 일생을 보낸 성리학자로 문집 ‘涵溪集(함계집)’ 5권 3책. 저서로는 ‘永洛風雅(영락풍아)’ ‘架禮考證(가례고증)’ 이 있다. 이번 영천역사박물관이 제33회 영천읍성전시관 ‘영일정씨’ 전시회에서 선보이는 100여점의 자료 중 하나로 조선 1707년 함계선생의 필사원고본을 저본으로 1963년에 9대 손 정화식과 10대 손 정도영(초대 제헌 국회의원)의 주도로 석인본으로 간행하였다.이 원고본을 편저한 시기는 선생의 맏아들인 매산 정중기의 ‘매산선생문집’ 속집 제10권 行狀(행장)중 先府君事實記(선부군사실기)에 涵溪公(함계공)께서 永洛風雅(영락풍아)를 “(丁亥)夏還涵溪始編永洛風雅-1707년 여름에 영천 선원리로 돌아와 비로소 ‘영락풍아’를 엮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영락풍아’란 ‘낙동강에는 영원히 시가 흐르고 있다’라는 뜻으로 “내용이 심오하고 또한 문장이 비단같이 아름답다”라고 설명하며 “한국고전문학의 총아라고 하여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한 밤중에 가장 빛을 발하였던 별들의 노래이기 때문이다”라고 2020년 5월에 ‘영락풍아’를 출간한 인수 정용하 선생은 설명하고 있다.1) 정중기 ‘매산집’에서는 ‘영락풍아’는 ‘圃隱이 永川에서 태어났고 退溪가 洛東江 가에서 살았기 때문이다’라고 밝히고 있다.2)1963년 석인본의 목차 순을 살펴보면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강호 감숙자, 태재 유방선, 취금헌 박팽년, 매죽헌 성삼문, 백옥헌 이개, 점필재 김종직, 한훤당 김광필, 일주 정여창, 탁영 김일손, 정암 조광조, 모재 김안국, 사재 김정국, 회재 이언적, 퇴계 이황, 남명 조식, 학봉 김성일, 서애 유성룡, 한강 정구, 여헌 장현광, 미수 허목 선생 등 22명의 문집에서 빼어난 글을 선별하여 필사하여 책으로 역었다. 장르별 구성은 잠, 명, 찬, 잡영, 부, 제문이 1/3을 점하고, 나머지 2/3는 오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절구, 칠언율시 등 한시로 구성되어 있다,수록된 글은 고려말에서 조선중기에 이르는 인물로서 당대 정승 반열에 봉직하신 분이거나 정승반열에 추증된 분으로서 시호에 “文”이란 자가 들어간 국내 최정상의 문인학자들이다. 이러한 글 중에서 또 다시 명문장을 선별하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든 것이다.3) 이 필사원본 안에는 1963년에 당시 석인본으로 간행할 때 표제지 안 속지에 ‘영천 선원 함계정인반’ -‘영천 선원 함계정에서 인출하여 널리 퍼뜨리다’ 라는 묵서필사와 영락풍아 원본목록도 함께 나와 초고(草稿) 역할을 했다. 원고필사본의 수록 내용 중 한시를 중심으로 석인본에 실어 양과 질에서 원고본이 훨씬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책은 2021년 경산 하양에 계시는 분에게서 구입한 것으로 영천 지역의 문화재가 환수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始祖 정습명(鄭襲明)으로부터 고조부 호수 정세아, 증조부 정의번을 거쳐 대대로 이어져온 함계 가문의 忠孝 의식과 그의 시세계의 경향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둘 수 있다.영천역사박물관 읍성전시관(조양각 옆)에서 원본과 석인본 2종과 ‘함계집’ 등 오천 정씨 관련 100여점이 전시되고 있어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최병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