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했으니 ‘계엄 정국’이라고 하자. 국민 다수와 거대 야당은 ‘탄핵 정국’이라 할 것이다. 두 정국이 정면으로 맞붙는다. 지금부터가 진검승부다. 야당은 국민이 자신들 편이라 믿는다. 정당(여당명) ‘국민의힘’ 말고 그야말로 ‘국민의 힘’을 믿고 탄핵안을 속결했다. 이미 대통령 지지도는 바닥권이었다. 20대 지지율은 한 자릿수였다.정권 말기면 으레 붙는 ‘레임덕’의 ‘레’자도 안 나오고, 바로 식물정권이 된 양 떠들고 있다.사람은 저마다 고유의 인생사를 갖는다. 그리고 개인의 역할이 중요하면 그이의 인생사는 곧 역사가 된다. 대통령의 인생은 일국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개인사가 아닌 역사로 남는다. 그런데 역사의 속성이 결국엔 개인사다.개인사는 그래서 중요하다. 우리는 대통령을 뽑을 때 개인의 과정사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현재의 인지도와 직분과 직위를 본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노무현 이후 적어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을 내리 그런 평판으로 뽑았다. 생존한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중 구태여 성공한 대통령을 뽑으라면 문재인일 것이다. 적어도 여론조사가 그리 나올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문재인은 대통령 재임 중에 대통령으로서 딱히 드러내고 한 일이 없다. 문재인 청와대의 수석과 비서관들이 국정을 주도했다는 게 세평이다.문재인은 노무현의 후광을 입고 대통령에 올랐지만, 그가 대통령이 오를 때와 올랐을 때 이미 문재인 정부는 문재인 중심의 정부가 아니라 민주화 세력과 시민사회 세력의 공동정부라는 이야기가 나돌았다.실제 문재인은 그의 이미지와 달리 기자들 앞에 여간해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정말 쥐죽은 듯이 5년을 보내다 나갔다.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내가 만난 정부 산하 기관장들은 하나 같이 말했다. “어공이 완전 개판을 쳐놓고 나갔다. 심각한 수준이다.”문재인이 차출된 선수라면, 윤석열 역시 차출된 선수다. 그는 민주당 입당을 저울질하다 여의치 않자 국민의힘에 입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대통령에 졸속으로 올랐기로 그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시끌시끌할 것이란 예상은 이미 너무 많았다.실제 2년 반 만에 이 초유의 계엄 정국을 이끈 건 대통령 자신이다. 놀랍게도 현직 대통령이 내란죄에 몰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야당 대표 이재명이나 조국이라면 몰라도 현직 대통령이 뭐를 더 쟁취하고자 내란죄 올가미를 써가면서 계엄령을 선포했을까.그리고 금세 후퇴했을까. 풀려고 하면 풀리지 않는 난제다.그러나 대통령 말을 믿는다면 단순하다. 나는 현직 기자로 있으면서 6,000명 정도의 지위고하의 사람을 만나봤다. 그들을 통해 개인사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달았다.본디 수성은 어렵고 공격은 쉬운 법이다. 아마도 세상의 힘 중에 ‘국민의 힘’만큼 센 것은 유사 이래 없을 것이다.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절묘한 말이 왜 누대로부터 흘러내렸겠는가.우리나라 대통령은 존엄적이란 이유로 국민이 때리기 쉬운 봉이 된 독특한 경우다.‘계엄 정국’에서 내란죄의 주인공이 대통령이 된 상황은 분노와 슬픔, 황당 따위의 감정을 억눌러서라도 곰곰 생각해 봐야 한다.이 중요한 대목이 여당의 ‘박근혜 (탄핵) 트라우마’ 탓에 정치의 언어가 돼버렸지만, 그래도 현직 대통령이 무슨 사정으로 내란죄의 주인공이 됐을까는 곱씹어야 한다. 죄를 묻는 일과는 별개로.국민이 몰아붙이는 힘은 막강하지만 국민은 그 누구도 대통령이란 자리에 올라가 본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대통령은 대통령의 개인사가 있고, 국민은 국민의 개인사가 있다.국민의 개인사가 역사가 될 확률은 희박하지만, 대통령의 개인사는 그 자체로 역사다.개인사가 시원찮은 대통령을 뽑은 건 유권자의 절반이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