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밤새도록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새벽 5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차를 우리고 책을 읽는 것뿐이었다.내게 책은 내 인생의 절반이기도, 전부이기도 한 것이다.이 책들 덕분에 얼마나 많은 문제를 풀었고,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던가.책이야말로 내게 부처요 하느님이요 한울님이다.5시 30분. 집에서 500m 거리에 있는 사우나에 전화를 넣었다. “영업을 하느냐, 세션사가 나왔느냐”고 물었다.자전거를 타고 가방을 챙겨 사우나로 갔다.세션사는 물론이거나와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사우나장에 홀로 들어섰다.바람소리,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그것들만이 간간이 적막을 깼다.나는 온탕에 들어앉아 정신을 수습했다.‘간밤의 사건을, 아니 지난 6개월의 사건을 오늘은 어떤 식으로든 매조져야 한다.’‘해묵은 감정은 내 몸의 때와 함께 흘려보내자.’‘도무지 승산 없는 이 게임에서 나는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누나, 형과는 의절해도 엄마와는 그럴 수 없다.’‘내가 만약 이대로 가족 모두와 의절하면 엄마의 남은 생은 그야말로 지옥이 된다.’‘그 지옥에서 생을 마감하면 또 한번 감정의 전복이 일어나 누나와 형은 내게 모든 비난의 화살을 돌릴 것이다.’나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6시 30분. 안내전화에서 안내받은 시간보다 1시간 늦게 세션사가 들어왔다. 손님은 여전히 나 혼자였다.때를 밀고 사우나를 빠져나왔다.아침 7시. 아직도 새벽인 양 어둑어둑했다.7시 30분. 어머니께 전화를 넣었다.“엄마, 나 오늘부터 그 얘기 일절 입에 담지 않을게요. 나 그냥 엄마만 보고 살게요. 엄마 연세가 내일모레 여든입니다. 여든 노인 상대로 이러는 거 나도 치사스러워. 누나, 형. 대화 안돼. 여기서 인연 끊으면 자기들 모자란 건 생각도 못하고 뒷날 내게 화가 미쳐요. 내 라온이 바론이 봐서라도 이런 대물림하기 싫어.”엄마가 울었다. “고맙다.”고 했다.“엄마, 울지 마세요. 눈물이 그리 헤픕니까.”“알았다. 알았다.”8시 30분. 먼저 일어난 라온이한테 엄마와 바론이를 깨우라고 했다.병원가서 아이들 감기약 처방을 받은 후, 공주 마곡사로 갔다.기분전환이 필요했다.라온이가 대웅보전, 대광보전, 관음전, 응진전, 명부전, 산신각을 돌며 3~15배를 올렸다.신통방통했다.“라온아, 무슨 기도를 했니?”“우리 가족 행복하게 사랑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안 싸우게 해주세요.”내 최고의 스승 라온이가 또 한수 알려준다.아빠 쨍그랑대는 소리가 안 좋고 나쁘다는 걸 라온이가 알고, 바론이가 안다.그래, 세상 아래 죽을 죄는, 죽일 죄는 없는 법이다.산신각을 내려오며 이번엔 라온이가 묻는다.“아빠는 무슨 기도했어?”“아빠는 기도 안했어. 절할 때 아무 생각 않고 하는 게 좋은 거 아닌가. 아빠는 그렇게 생각해.”(사실 아빠는 절을 하면서 아빠를 위한 기도는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어. 고모를 위해, 큰아버지를 위해 늘 했지. 근데 이제 그런 기도는 안 할 거야. 인생은 각자도생이거든.)나는 2025년 1월 1일 새해를 그리 맞았다.마곡사를 다녀와 간밤 못잔 잠을 잔 뒤, 밤 8시쯤 어머니께 아이들 사진과 함께 카톡을 넣었다.‘어무이 이모들이랑 통화는 하셨어?우린 마곡사를 다녀왔어.라온이는 대광보전ㅡ대웅보전ㅡ관음전ㅡ응진전ㅡ명부전ㅡ산신각을 돌면서 3배에서 15배씩을 하더라고. 갈 때는 가기 싫다고 했는데 막상 가서는 절을 예쁘게 잘하더라고.할매랑 운수암을 같이 가도 되겠어.’엄마는 새벽에야 카톡을 확인했다. 그래 주무셔야 살지. 살아야 잠도 잘 수 있는 거지. 죽으면 모두 끝 아닌가. 나는 남은 엄마 생에 화양연화(花樣年華)를 굳건히 약속드렸다.천륜(天倫), 이거 엄청난 거다. /심보통 2024.1.2.*잠자리에 들기 전에 라온이에게 물었다. “라온아, 절에서 절하는 게 좋았어?”“응.”“왜 좋았어?”“3번 절하면 3만원, 15번 절하면 15만원을 받을 것 같았거든.”아이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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