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오흥리 산 32-1번지 금광저수지 위쪽에 보면 조선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안효공 심온(沈溫)의 처 순흥안씨의 묘가 있다. 순흥안씨는 바로 세종의 비인 소헌왕후의 모친이고 세종대왕의 부부인으로 한평생을 남편의 내조와 자녀교육에만 헌신했다고 한다. 청송심씨는 고려 충열왕 때 문림랑(文林郞)으로 위위시승(衛尉寺丞)을 역임한 심홍부(沈洪浮)를 시조로 하고 있다. 심온은 그의 5세손이며 세종의 장인으로 영의정을 지냈고 또 심온의 둘째 아들 심회(沈澮)도 세조 때 영의정을 지냈다. 그리고 심회의 증손인 심연원(沈連源)도 명종 때 영의정에 오르고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이어 심연원(沈連源)의 아들 심강(沈鋼)도 명종의 장인으로서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에 봉해졌다. 또한 그의 손자 심열(沈悅)은 인조 때 영의정에 올랐으며 심열의 현손 심호(沈浩)도 경종의 장인으로 청은부원군(靑恩府院君)에 봉해졌다. 그러므로 이 가문에서 세종비 소헌왕후, 명종비 인순왕후, 경종비 단의왕후 등 안효공파에서만 왕후 3명과 부마 4명을 배출한 조선조 최고의 가문이었다. 그리고 약 200여 명에 이르는 대과급제자 중 13명이나 정승에 올랐으며 이는 조선조에서 전주 이씨(22명), 안동 김씨(19명), 동래 정씨(17명)에 이어 네 번째 순이고 특히 그의 아들 심온과 손자 심회까지는 3대에 걸쳐 정승에 올랐다. 그런데 세종대왕의 아버지인 태종 임금은 외척들을 유난히 경계하고 싫어하였는데 심온의 세력이 점점 커질 것을 우려한 나머지 당시 좌의정이었던 박은의 무고로 그 역시 태종의 사약을 받고 죽은 비운의 관료였다. 이 묘소는 1444년 순흥안씨가 죽자 사위인 세종대왕은 수원시 이의동 안효공(심온) 묘역에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렀으나 세조 13년(1467) 5월 3일에 왕명으로 다시 이곳에 이장해 왔다. 이곳의 산세는 안성시 금광면 오흥리의 청량산(338.2m)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자락 용진처(龍盡處)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에는 장풍(藏風)의 조건인 사신사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어 어디 하나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한 자리로 보인다. 특히 청룡·백호는 혈장을 잘 감싸주고 있으며 혈장 아래의 금광저수지는 혈장의 생기를 잘 갈무리해주고 있다. 풍수에서는 청룡·백호 끝자락에 저수지가 있어 주변의 모든 물이 이곳으로 모여들면 이를 융저수(融貯水)라 하고 물이 깊은 만큼 발복이 오래간다 하였다. 주산인 청량산 후미에서부터 남쪽으로 뻗어 내려온 용맥은 우선룡이고 혈장 앞 물길은 좌선수로 용수배합에서도 합법하다. 여기서 묘소의 좌향은 임좌병향(壬坐丙向)이고 물이 마지막으로 빠져나가는 파구는 우측의 정미(丁未) 방향이다. 이는 88향법으로도 자왕향을 얻었으니 향법으로도 최고의 길향이다. 풍수서 『地理五訣』에서는 용진혈적(龍眞穴的)에 자왕향(自旺向)이 합법이면 남총여수(男聰女秀)하고 조빈석부(朝貧夕富)하는 속발(速發)의 길향이라 하였으니 남자는 총명하고 여자는 그 외모가 빼어나며 아침에 가난한 자가 저녁에 부자가 될 만큼 속발한다고 하였다. 풍수가에서는 이 묘소의 발복으로 청송심씨들의 번영을 의심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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