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고(故) 이건희 기증 컬렉션에는 영천과 관련된 문화재가 한 점 있다.
- 영천시립박물관 개관 대여 전시 1순위 문화유산- 건희 000010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紺紙金泥大方廣佛華嚴經>- 국보 제235호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7 경상도 신령현 조에 기록- 영주이지은소승위현비(永州利旨銀所昇爲縣卑)는 어디에...“이건희 컬렉션”은 대한민국의 기업인 삼성그룹 이건희가 개인 소장하던 컬렉션으로, 2020년 10월 이건희의 사망 이후, 국가에 기증한 문화재와 미술품 23,000점을 일컫는다.단순 규모만으로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문화재, 미술품 국가기증 사례로 기록되었으며, 이 회장의 컬렉션이 미술사적으로 컬렉션의 가치와 기증 면에서 문화계에 전례 없는 여파를 불러일으키며 “세기의 기증”이라 불렸다. 이 가운데 영천과 관련된 문화재가 있다. 고려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국보 제235호로 지정되었고,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소장하였다가 2021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영천 신녕인 이야선불화(李也先不花) 발원. <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紺紙金泥 大方廣佛華嚴經普賢行願品)>변상도, 고려 1341∼1367년, 금자필사절첩본, 26.4 × 9.6㎝, 국립중앙박물관. 세부 명칭은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입불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정원본(紺紙金泥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貞元本)>이다. 쪽물을 들인 검푸른 빛이 나는 감지 종이에 금가루를 아교에 개어 써내려간 금자경(金字經)으로 일종의 병풍처럼 펼쳐볼 수 있게 만들었다. 책 앞부분에는 행원품변상도(行願品變相圖)라는 그림이 금으로 화려하게 그려진 화엄경 34권을 쓴 것이다.이 경전의 제작 시기는 고려 말 ‘지(至)’자로 시작되는 원대(元代)의 연호를 사용한 점과 책의 형태나 제작방법으로 보아 고려 말인 1341∼1367년 사이에 간행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서(古書)나 문화재에서는 제작기록이 매우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불교 경전은 발원문이 기록되어 있어 제작시기, 제작 이유, 제작을 의뢰한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 발원문을 제작 이유를 살펴보면 “(원나라) 황제의 치세를 공고히 하고 자신의 무병장수와 모든 가족들이 재앙에서 벗어나길 발원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영천 신녕인 이야선불화(李也先不花) 발원. <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紺紙金泥 大方廣佛華嚴經普賢行願品)> 발원문 부분, 고려 1341∼ 1367년, 금자필사절첩본, 26.4 × 9.6㎝, 국립중앙박물관.제작을 의뢰한 발원자는 이야선불화(李也先不花)로 삼중대광(三重大匡) 벼슬을 지낸 인물로 후일 영인군(寧仁君)이 된 인물로 친원계 세력가로 영천 신녕(新寧)인이다. 문헌 기록에는 영리군(永利君)으로 되어있다.일제강점기에 창씨개명처럼 원의 지배하에 있던 고려도 원(元)의 이름으로 개명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 책의 시주자인 성(性)은 이씨(李氏)로 본관은 알 수 없다. 이름이 야선불화(李也先不花)로 기록되어 있다.이야선불화(李也先不花)는 고려 시대의 문인인 최해의 문집(文集)인 ‘졸고천백(拙藁千百)’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영천 신녕에 비석 하나가 있는데 영주(永州- 고려 때 영천) 이지은소(利旨銀所)를 현(縣)으로 승격시킨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고 기록되어져 있다.1)2013년 MBC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던 기황후(奇皇后, 1315년 ~ 1369년)가 원의 황실에 있던 시기로 영천 신녕인 이나수(李那壽)와 이야선불화(李也先不花)는 어려서 원의 환관인 내시로 들어가 일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졸고천백(拙藁千百)’에는 “신녕이 옛날에는 현(縣)이었는데 중간에 사람들이 국명을 어겨 현을 패하고 소(所)로 강등을 시킨 것을 다시 회복시키라는 명을 원(元)나라 기황후(奇皇后)의 뜻에 꼭 맞추어 신녕을 현으로 승격시키라는 명을 시행하라는 왕명을 전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일치하고 있다. 충숙왕 재위 시기인 1336년 이나수(李那壽)가 사신으로 와서 현사(縣司)와 현령(縣令)을 회복했으며, 충혜왕 시기인 1340년 이야선불화(李也先不花)가 고려로 와서 이러한 “전말의 기록을 비문에 새겨서 세우게 했다.”고 고려 문신 최해(崔瀣, 1287~1340)는 비문에 기록했다.이나수(李那壽)의 관직는 봉의대부 견용대감(奉議大夫 甄用大監)이고 이야선불화(李也先不花)는 중의대부중서사승(中議大夫 中瑞司丞)으로 이후 나수는 신안군(信安君)이라 불렀고, 야선불화는 영리군(永利君)이라 불렀다.위 기록으로 보아 이야선불화(李也先不花)의 주도로 영주이지은소승위현비(永州利旨銀所昇爲縣卑)는2360 1340년경에 세워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의 발원문에는 이야선불화(李也先不花)가 자신의 무병장수와 일가친족의 평안을 빌기 위해 간행한 ‘금강경’, ‘장수경’, ‘미타경’, ‘부모은중경’, ‘보현행원품’ 가운데 하나이다. 검푸른 색의 감지(柑紙)에 금색으로 정성스럽게 옮겨 쓴 것으로,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되어 있으며,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26.4㎝, 가로 9.6㎝이다. 특히, 변상도 뒷면에 ‘행원품변상문경화(行願品變相文卿畵)’란 글씨가 있어 변상도에는 작가를 밝히고 있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