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여자(24)엉덩방아를 찧고 뒤로 넘어진 자세에서 눈에 들어온 생명체는 고양이였다. 그러나 고양이라고하기에는 이제껏 알고 있던 고양이보다 두 배 더 큰 덩치였다. 자신의 지식 안에 뭉뚱그려 집어넣으며 안간힘으로 정체를 알고 싶어 했다. 호랑이는 아닌 게 분명했다. 멸종된 호랑이를 한반도에서 연관시키기에는, 그만큼 멍청이가 아니라고 생각되어졌다. 비록 넘어져 형편없는 자세로 두려움에 떨고 있지만 맞닥뜨린 인간이란 이유로, 웬만하면 달아나거나 눈치를 볼만한데 추호도 그럴 생각 없이 으르렁 거렸다. 간 큰 놈이라 생각되어졌을 때 ‘삵’이 떠올랐다. 깡마른 여자는 엉덩방아의 자세로 뒷걸음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삵은 뱀을 물고 있었다. 이 숲에서 누구의 방해도 위협도, 한 발 비켜간 당당함이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뱀은 요동치고 있었다. 마지막 안간힘이 삵의 입속에서 무력하게 나동그라지고 있었다. 먹이를 낚아챈 맹수에게 뿜어져 나오는 강인함이 둥근 머리와 강한 턱으로 전달되어 새벽 숲을 깨우고 있었다.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쩌렁쩌렁 나무사이로 휘감으며 치닫고 있었다. 약간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삵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싶었다. 행동반경에 들어간 숲의 정의로움과 퍼즐이 맞춰진다면 굳이 영역표시를 하지 않아도 고만한 생명체는 들끓을 것이다. 엄연히 먹이사슬은 존재하고 편향되지 않는 숲의 무게 추는 끊임없이 밤과 낮으로 쥐락펴락하는 하루로 들어차 있을 것이다. 뱀이며 쥐, 꿩, 산토끼, 청설모, 다람쥐, 오리, 어린 멧돼지까지 삵의 먹이로는 충분한 것 같았다. 먹이를 찾아 먼 곳으로 갈 것 없이 숲이 제공해주는 푸른 텃밭이 광활하게 제공되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깡마른 여자는 숨을 죽였고, 삵의 입속에는 뱀의 꼬리가 파득 거렸다. 마치 혓바닥을 길게 뽑아 곤충을 사냥하는 카멜레온처럼, 자신의 혓바닥으로 연출하는 능청스러움에 나무 뒤로 몸을 접어며 그 자리를 피해주었다. 한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이미 포식자의 상위계층으로 우뚝 선, 삵의 서두르지 않는 늠름한 자태에 대한 별다른 이견은 있을 수 없었다. 다만 선점한 먹이에 대한 위협으로 느끼지 못한 존재감이 조금은 억울했다. 생각해보니 더욱 기세등등하게 으르렁 거렸던 잠깐만이라도 자신을 의식했다고 생각이 되어졌다. 숲의 권좌에서 내려올 수 없는 이유는 흔들림 없는 자태를 보여준 삵의 당당함에서 찾을 수 있었다. 깡마른 여자가 돌아오는 숲길은 새벽이 이슬처럼 맺히고, 달빛이 순해지면서 어둠이 매립되는 시간이었다. 다음에도 숲의 끝을 보려고 무모하게 길을 나설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단언했다. 사실 무서웠다. 두려웠고 작은 명분이라도 생기면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방금 지나온 숲에서 뒤를 돌아보기를 기다려 무언가 덮칠 것 같은 공포로 온 촉수가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번은 잰걸음으로, 한번은 느린 걸음으로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전진할 수밖에 없었다. 살포시 내려앉은 어둠 안에 잠긴 숲은 어떻고, 달빛이 주렁주렁한 두서없는 나뭇가지는 어떻고, 그칠 줄 모르는 풀벌레 소리는 어떻고, 야밤을 뚫고 달려온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산짐승 소리, 낙엽 떨어지는 소리까지 한 통속으로 울어대는데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을 재주가 있겠는가. 다시는 이 길에 들어서지 않는다고 결심하며, 깡마른 여자는 등줄기에 맺힌 식은땀을 그제야 의식했다. 얼마나 왔을까. 저기, 우로지의 가로등이 보였다. 깊게 뿌리박힌 나무들은 그 밤에도 꼿꼿하게 버티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