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시 북구 기계면 미현리 산 1-1번지에 가면 신라시대 아찬(阿飡) 벼슬을 지낸 기계유씨의 시조 태사 유삼재의 묘소가 있다. 그의 후손인 유의신(兪義臣)은 신라가 쇠했는데도 불구하고 고려에 투항하지 않자 왕건(王建)이 기계현의 호장(戶長)으로 삼으니 그의 후손들은 기계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 나가고 있다. 그러므로 유(兪)씨의 성이 처음 받아들여진 것은 통일신라시대지만, 본관이 처음으로 정해진 것은 고려 초기이다. 후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은 전국의 군현 명칭을 바꾸고 각 읍의 지배 세력인 향리층에게 성(性)을 정해줌과 동시에 유이민(流移民)을 정착시켜 신분 질서를 유지하고 효과적인 징세·조역(調役)을 위해서 본관제도를 실시하였다. 그에 따라서 당시 유삼재의 4세손인 호장(戶長) 유의신(兪義臣)이 세거하고 있던 기계현(杞溪縣)이 출신 지역을 나타내는 본관으로 정해져서 기계유씨의 본관이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의 대부분 명문가에서는 가문의 위세를 드러내기 위해 가급적 이름난 조상을 시조로 정하고 세계(世系)를 편성해서 오늘과 같은 종중(宗中) 조직으로 발전해왔다. 기계유씨는 고려 전기에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여러 대에 걸쳐 은둔생활을 하다가 고려 후기에 이르러 일족이 경기도 남쪽 지방으로 이주하면서 다시 벼슬에 뜻을 두게 되었다. 그런 후 조선시대에는 문과급제자 90명, 상신 3명, 판서 12명 등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후손 중 유응부(兪應孚)는 조선조에서 무과에 급제하여 단종 복위를 모의하다 처형된 후 사육신(死六臣)의 한사람으로 지금껏 우리들의 뇌리에 남아있다. 유태사 묘역에는 조선 숙종 15년(1689년)에 세운 부운재(富雲齎)가 자리하고 있으며 신도비도 세워져 있다. 신도비(神道碑)란 높은 관직을 지낸 사람의 공적을 흠모하는 뜻을 담아 무덤 근처에 세우는 공덕비를 말한다. 이곳의 산세는 낙동정맥의 한쪽 자락이 포항시 북구 송라면의 내연산(710m)을 지나 계속 남쪽으로 뻗어 내려와 신광면의 비학산(760m)을 일으켜 이 묘소의 주산이 되었다. 묘소는 주산인 비학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의 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풍수서 『인자수지』에서는 혈의 위치를 정할 때 삼세 정혈법이라 하여 좌우의 용·호가 높고 안산이 높으면 혈도 높은 곳에 있으니 천혈을 취해야 한다고 하였으니 이곳은 좌우 용·호가 높아 혈도 높은 곳에 천혈을 취했다. 혈장 뒤 현무봉은 금형의 부봉으로 묘소에 좋은 기운을 보내주고 있고, 혈장은 유혈로 두 기가 상하로 모셔져 있다. 청룡·백호는 양호하고 우측 백호의 허(虛)한 부분은 외백호 자락이 막아주고 있는데 그 모양은 아름다운 금형의 봉우리로 삼길육수방에 위치하고 있다. 천혈을 취하다 보니 좌측 어깨 부분이 약간 낮아 이곳은 소나무를 심어 비보(裨補) 하였고, 앞쪽으로는 용호의 끝자락이 2~3겹으로 거듭 감싸주고 있어 구곡수로 물이 흘러나가니 혈장에 많은 생기를 공급해준다. 원래 풍수무전미(風水無全美)라 하여 완전한 땅이란 없는 법, 모자란 부분은 비보(裨補)를 하여 완전한 장풍국을 이루니 이곳은 좋은 길지로 평가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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