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가 일어나기전인 지난 연말 국회의 실상을 잠시만 떠올리겠습니다. 예산안 합의가 이뤄지지 않자 국회의장이 11월 10일까지 예산안을 협상하라고 다그쳤습니다. 하지만 그달 29일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부가 제시한 677조4천억원에서 4조1천억원을 삭감한 예산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켰습니다.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의 특수활동비를 비롯해 검찰 등 사정기관의 특수업무경비와 특활비가 전액 삭감됐습니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쪽수에서 밀려 우는 소리를 했지만 달리 뾰족수가 없었습니다.감액 예산안의 예결위 통과후 쏟아진 포털사이트의 기사에는 대체로 부정적 뉘앙스가 강한 ‘사상 초유’ ‘거야 마음대로’ ‘예산 행패’ 같은 표현을 썼습니다. 아무리 표결로 하는 다수결의 원칙을 적용되는 국회지만, 수적 우위를 내세워 소수 의견을 무시하는 건 능사가 아닙니다, 또 국회에서 이뤄지는 모든 결정은 대화와 타협, 합의를 전제로 한다는, 정치의 교과서적 판단이 반영된 결과의 표현들일 것입니다.그렇지만 그 기사들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분위기는 제목과 온도차를 보였습니다. 요약하면 ‘사이다’, ‘속 시원하게 잘했다’는 쪽이 월등했습니다. 몇가지를 보면 “특활비가 왜 필요함. 국민들은 굶어 죽을 판이구먼” “검찰 맘대로 쓰던 특활비 삭감하면 방탄?” “편파적인 수사 하더니 자업자득” “속이 후련하다. 이런 폭주라면 적극 지지” 등입니다. 이런 날 선 댓글들은 ‘영수증 없이 맘대로 쓰는’ 특활비에 대한 부정적 인식뿐만 아니라 ‘검찰공화국’이란 표현이 억지스럽지 않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남발하는데, 예산안을 강행 처리하는 민주당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정치를 법으로 한 건, 윤석열 정부가 먼저다”라는 분노의 표출도 담겨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분명 있었습니다. 이재명 대표의 방탄과 수사에 대한 복수를 위한 “이재명당의 입법독재 실상”이라고 강력히 질타하는 목소리 말입니다. 그런 중앙정치의 일련의 행태를 보면서 문득 그 전해, 그러니까 2023년 연말 본예산 심사를 하던 우리지역 집행부와 의회가 떠올랐습니다. 야당측은 사실상 권력기관의 특활비가 사용 내역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를 대면서 전액 삭감한다는 명분을 붙였지만 내용을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특활비는 마약이나 성범죄, 딥페이크, 조폭 수사 등 장기형 조직범죄 수사에 필요한 경비이기 때문에 일시와 액수를 특정하기 어려운 성격의 예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요불급 예산을 삭감하는 것이 국회의 역할이자 권한임을 감안하더라도 0원으로 삭감한 것은 폭력적 입법독재라고 말합니다. 우리 의회도 당시에 그랬습니다. 일부 홍보비의 실효성을 따지며 홍보예산 전액을 삭감한 기억이 있습니다. 국회도 그렇지만 우리도 보기에 따라서는 다분히 보복성이나 지나친 견제의 결과라고 느낄 수 밖에 없고, 어떤 설명을 해도 설득력은 떨어집니다. 이럴 때 정치의 교과서적인 장면은 정부·여당이 야당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모습을 보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 당시에 극심한 비난만 퍼부으며 맞대걸이를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국정을 사실상 마비시키려는 정치적 의도라 표현하며 “헌법질서 유린” “야당 방탄을 위한 보복 탄핵” “전대미문의 입법 폭주” 같은 격한 말들을 쏟아내며 한껏 독이 오른 모습을 보였지요. 그런 일련의 갈등 끝에 급기야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돌이켜 생각해도 아쉬움이 많은 대목입니다. 결국 정치란 대화와 타협이며, 심하면 흥정인데 그 과정엔 양보가 들어 있으며, 종착역은 합의입니다. 그런데도 죽자고 싸우면 어쩌자는 것일까요. 그들이 그렇게 싸운 끝에는 민생경제도 국민도 나라도 다 죽상이 됩니다. 지역 정치권도 이런 점을 숙지하고 깨달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