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번엔 ‘우물 안 개구리’로 글을 지어줘.”  라온이가 어제 하교 후 집에 와 ‘백문불여일견’에 이어 ‘우물 안 개구리’를 주제어로 제시했다.‘우물 안 개구리’는 통상 좁은 식견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 넓은 줄 모른다”는 속담은 그리 생겨났다.그런데 생을 일구고 경영하다 보면 ‘우물 안 개구리’는 “중용(中庸)”과 맞닥뜨리는 경우가 왕왕 있음을 알게 된다.내 첫 신문사 입사동기 최지호(현 울산MBC기자) 이야기가 좋은 예가 된다.지호는 경북대 신방과를 나와서 첫 입사를 기자로 하지 않고 광고직원으로 했다. 2008년께 미국발 금융위기로 신문사는 3년째 월급이 동결 중이었다.2010년께 3년 만에 공채를 했는데, 그 전년도에 경영진에서 내부 인력을 편집국으로 이동시키는 조치를 시행했다.그때 지호는 서울 광고지사에 파견을 가 있었다. 당시 회장의 지시 아래 경영지원실장, 광고국장, 서울본부장 정도만 알은 채 지호의 인사이동을 추진했다.지호는 갑작스러운 회사 제안에 고민하다가 내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 나는 내부 사정과 지호의 근황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나는 거두절미하고 지호에게 말했다.“지호야 편집국으로 와라. 그게 네 장래를 위해서라도 맞다. 서울의 본부장도 적극 지원한다면 절차상 무리는 없을 거다.”그런데 이 사안이 편집국 회의에도 오르자, 편집국에서 반발이 극심히 일었다. 표면적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동향을 파악하는 내 질문에 선배 열이면 열이 비토했다.나는 편집국 선배들의 태도에 화가났다. 동시에 이렇게나 좁은 식견을 갖고 기자를 하다니 정말 놀랍다고 생각했다.어느 누구도 “대체 최지호가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묻지도 않으면서 광고국에서 편집국으로 옮겨오는 건 마치 신성한 성역을 무단으로 넘는 양 말하고 행동했다.답답한 나머지 당직을 끝내고 늦은 시간, 두 선배님을 모시고 회사 근처 막걸리집으로 갔다.막걸리를 마시면서 “지호는 회사를 사랑하는 친구입니다. 능력도 있고 기자를 해도 잘할 친구입니다”라고 항변했다.그러나 내 항변은 선배들만 자극시켰다.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넌다는데 하물며 섶다리야 두세 번 점검하고 건너야 마땅한 게 아닌가.그런데 현실에선 ‘우물 안 개구리’처럼 근거 없는 확신에 찬 선배들이 전부였다. 나는 절망했다.“선배님, 이게 누구 뜻인지는 아십니까?”“누구 뜻인데?”“회장 뜻입니다.”“그래?”두 분 중 한 분은 적이 당황해했다. 그 분은 나중에 편집국장에 논설실장을 거쳐 이사에까지 올랐다.결국 지호는 2009년 내부 인사이동에 실패했지만, 2010년 3년 만에 한 공채를 통해 기어이 편집국에 입성했다. 경영진이 공채라는 좀 더 촘촘한 절차를 거쳐 결국 광고국 직원이었던 지호를 편집국으로 옮겨 심은 것이다.게다가 공채에 합격하자 경영지원실에서 지호의 월급은 내 연차와 똑같이 받도록 배려해주었다. 그러자 지호가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달라져 내게 하루아침에 “선배님”에서 “지훈아”로 호칭했다가, 편집국에서 심한 욕을 본 적이 있다.회사의 배려를 갖고 지호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위계질서까지 무너뜨리려 했다.내가 편집국에서 쌍욕을 하며 몰아세울 때, 그 담당 데스크조차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지호는 편집국의 위계를 너무 쉽게 보았다.이 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호는 편집국 시집살이를 다른 제 동기에 비해 심하게 해야 했다.지호는 홀로 외돌았다. 중앙에 종편이 생겨나면서 카운터 파트너로 신문사 종편담당 방송기자가 생겼다. 지호는 그 외직을 맡았다. 홀로 계획을 세우고 홀로 취재했다. 하지만 지호는 새벽 취재도 마다않고 열심히 일했다. 내가 먼저 신문사를 떠나오고 1년 뒤 지호가 울산MBC로 이직했는데, 지호가 방송기자로 떠나간 건 이직을 마음먹고 한 것이 아니었다.누구도 가르쳐주지 않고 가르쳐줄 수도 없는 신문사 내 방송기자 역을 스스로 잘하고 있는지 점검 차원에서 응시한 것이 덜컥 된 것이다.이번에도 지호는 전화를 주었다. 나는 말했다.“망설일 게 있나. 신문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울산MBC면 박정희 정부 실세였던 이후락이 소유했던 거 아닌가. 대구MBC보다도 탄탄할 건데. 무엇보다 편집국이 너를 서자 취급하고 있잖아. 대우가 더 나은 곳으로 가라. 너는 그럴 자격이 있다.”‘우물 안 개구리’는 총론적 식견이 좁다는 말도 되고, 각론적 식견이 좁다는 말도 된다.요즘 사람들은 디테일의 힘을 강조하지만, 제너럴의 힘도 그에 버금간다.다만 사안마다 촘촘하게 들여다볼 것인가, 대충 훑고 넘어갈 것인가를 판단해야 한다.논리와 설명의 결핍에도 어느 한쪽으로 경도된 것, 그 모두가 실기(失機)이므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기자 출신 소설가 김훈은 이처럼 어느 일방만을 고수하지 않고, 일방으로 치닫지 않는 걸 두고 “과학적 사고”라고 했다.과학적 사고는 달리 입체적 사고랄 수 있다. 라온이 수준에서 ‘우물 안 개구리’를 설명하자면, 독서 영어 연산 같은 공부만 중한 줄 알고 유튜브 게임 같은 전자놀이 중한 줄은 모르고 살면 그게 바로 ‘우물 안 개구리’라는 거다. 과학적 사고, 입체적 사고는 의외로 쉬울 수 있지만 그 정도를 준수하는 중용은 정말이지 대단히 어렵다. 때문에 미디어를 원천 차단하는 악수를 두어 아이가 삐뚤어지는 패착을 두게도 된다. 이 패착이 바로 ‘우물 안 개구리’ 식견 때문임을 후에 알게 된다. 이 견해를 연장하면 ‘우물 안 개구리’는 “뒤를 보고 사는 삶”을 함의한다.인간사에서 욕망과 욕구의 해소는 중요하다. 이는 먹고 싸는 일과도 같다. 뒤를 본다면 풀어줄 건 풀어줘가며 깜냥껏 살도록 돕는 게 상수다.아무튼 지호가 울산MBC로 간 것은 신문사로선 패착이 아닐 수 없다. /심보통 202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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