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여자(25)마치 새벽을 찾아 나선 발걸음처럼 숲의 발원지에서 벗어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것이 우로지 주변의 풀끝으로 모아진 이슬방울이, 곧 닥칠 여명의 순간을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다. 편백나무에 걸려있던 방패연을 자연스럽게 떠올렸고, 몸속에서 끝없이 전송되던 어린 날의 추억을 다시 두고 온 듯 미련으로 발걸음을 멈췄다. 순한 바람이 옷깃을 적셨다. 뒤를 돌아보면서 빠져나온 숲을 보았고 키 큰 나무들이 차렷 자세로 배웅해주고 있었다. 산비둘기 한 쌍이 날아와서 숲 언저리에 앉았다. 반짝거리는 반딧불이를 노리는 것도 같았다. 풀 섶을 헤치며 부산하게 움직이는 산비둘기 가까이에 살기등등한 눈빛이 깡마른 여자 눈에 포착되었다. 삵을 보지 못했다면 길고양이로 단정했겠지만 그 존재를 경험했기에 더욱 마른 침을 삼켰다. 잠깐, 소리를 질러 산비둘기에게 위험을 알리고 싶었지만 자연의 질서를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들짐승이 날짐승을 낚아채는지 정말 보고 싶었다. 새벽 운동 나온 사람들의 발소리가 닿지 않기를 가림막 역할에 더 충실했다. 삵은 서서히 전진하고 있었다. 날아오르면 어느 정도 거리에서 튀어 오른다는 계산된 발걸음은 분명했다. 일체의 소리도, 일체의 욕심도, 일체의 정체도 없이 오롯이 다가가고자 하는 거리로 스르르 미끄러지는 삵의 유연함에 혀를 내둘렀다. 저러다가 놓친다는 생각보다 어쩌면 ‘원 플러스 원’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산비둘기가 위험을 감지했다. 약간 떨어져있는 한 마리에게 다급한 날갯짓으로 푸드덕 날아올랐다. 삵은 곧 목표물을 변경했다. 날아오른 한 마리를 포기하고 미처 날아오르지 못한 한 마리를 향해 몸을 웅크렸다. 산비둘기가 날자, 그때를 기다려 용수철 역할을 하는 뒷다리가 몸뚱이를 고스란히 공중으로 튕겨져 쏘아 올려주었다. 삵의 앞발이 허공을 가르며 산비둘기를 바닥으로 패대기치기 위해 뻗고 있었다. 저만치 아침이 꿈틀대고 햇살사이로 산비둘기는 허공에서 사라졌다. 삵은 정확하게 상처 입은 산비둘기 몸 위로 착지했다. 그 놀라운 광경이 깡마른 여자로 하여금 본능에 가깝게 손가락을 가리키게 하는 동작으로 이어지게 했다. 가까스로 피한 산비둘기 한 마리는 멀리 날아가지 않고 공중에서 원을 그리며 날아다녔다. 구해주고 지켜주지 못한 마음이 고스란히 읽혀졌다. 삵은 바르르 떨고 있는 산비둘기를 물고 깡마른 여자와 눈이 마주 쳤을까, 잰걸음으로 숲속으로 사라졌다. 손가락질 하는 손가락을 거둘 생각도 하지 않고 오래도록 그 자세로 서있었다. 놀랍고 경이롭고 비정한 세상이 어쨌든 펼쳐져 다가왔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조깅을 하던 몇은 깡마른 여자의 거두지 않는 손가락 끝을 보았고, 공감이 된 듯 공감이 되지 않는 듯 애매한 표정으로 서로의 시간 속으로 멀어져 갔다. 이쯤이면 집에 가고 싶었다. 지금 집에 가지 않으면 잠의 리듬을 잊은 채 다시 불면으로 힘겨워질 것 같았다. 텐트촌을 지나면서 무심한 듯 한번 씩 흘끗 거렸다. 혹시 텐트 안에 혼자 있는 남자를 발견한다면 저번처럼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낯선 한 여자에 대해 궁금할 사이도 없이 옷을 벗기고 몸을 허락해 줄 것이다. 남자는 헌혈하듯 깡마른 여자의 몸속으로 정액을 주입할 것이다. 본능에 충실하다면, 자신의 씨앗을 떨어뜨리도록 설계되어 있는 모두들 남자니까. 그들의 세상에서 당연하게 휘두를 수 있는 모두들 권리니까. 다함께 인정해주는 공식으로 그곳은 혹성 같은 부호들로 가득한 모두들이기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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