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시 북구 기계면 봉계리(기남길 253) 봉좌마을 뒷산에는 파평윤씨의 시조 태사 윤신달(893 ?~973)의 묘가 있다. 그는 918년 신숭겸, 홍유 등과 더불어 궁예(弓裔)를 축출하고 왕건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한 고려의 개국공신이다. 왕건은 고려 건국에 대한 공로로 윤신달 장군에게 2등 공신을 책훈하고,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의 관직을 내렸으며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받들어 본관을 파평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조선씨족통보」와 「용연보감」 등의 문헌에 따르면, 윤신달은 파주 파평산 기슭의 용연지 연못에 있던 옥함 속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가 태어날 때 겨드랑이에 81개의 비늘과 발에는 7개의 검은 점이 있었고, 손바닥에는 윤(尹)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성을 윤(尹)으로 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고려의 개국공신으로 당시 다른 공신들처럼 성을 하사받았을 확률이 높다고 보지만 공식적인 기록이 없어 확실하진 않다. 그의 후손들은 윤신달의 5세손인 고려시대의 명장 윤관장군이 있고 조선조에는 문과급제자 347명을 비롯한 왕비 5명, 상신 11명 등 수많은 인재를 배출해낸 명문가 집안이다. 우리나라 제20대 윤석열 대통령도 파평윤씨이고 대통령 당선 후 곧 이 묘역에 다녀갔다고 한다. 그런데 윤신달의 묘소가 관향인 경기도 파주에 있지 않고 경북 포항에 있는 것은 윤신달이 동경(現 경북 경주시) 대도독으로 30여 년간 재임하다 이곳에서 일생을 마쳤기 때문이다. 문헌에 의하면 “고려 2대 왕인 혜종이 이모부인 윤신달 장군을 동경 대도독으로 제수하여 신라 유민 중에서 고려에 불복하는 자를 다스리게 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30년을 재임하고 81세를 일기로 졸하니 기계현 벌치동 구봉산 아래 유좌(酉坐)로 유택을 마련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묘역 아래에는 묘소를 관리하기 위해 조선 영조 때 건립한 봉강재(鳳岡齋)가 있고 그 앞쪽에 유허비(遺墟碑)도 세워져 있다. 이곳의 산세는 낙동정맥의 줄기인 영천시 자양면의 운주산(802.3m)에서 동남쪽으로 하나의 지맥을 뻗어 내려와 포항시 북구의 봉좌산(615m)을 일으켜 이 묘소의 주산이 되었다. 묘소는 봉좌산에서 북동쪽으로 뻗어 나온 용맥에서 다시 동쪽으로 하나의 가지를 뻗은 지룡(枝龍)맥의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본용맥은 계속 뻗어나가 이 묘소의 청룡자락이 되었다. 주변의 사신사는 대체로 양호한 편이고 특히 백호 자락은 높이나 거리면에서 최상급으로 묘역을 잘 감싸주고 있어 완전한 장풍국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운주산에서 봉좌산으로 이르는 지맥이 수년 전 고속도로가 나면서 크게 훼손되었고 좌측의 청룡 자락도 뒤편이 절개되어 현재는 지기가 설기 되고 있다. 그러나 조성한 지 1,000년이 넘는 묘소라 음택풍수의 근거인 동기감응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 같아 후손들에게는 별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 묘소의 수세는 좌선룡에 우선수로 합법하고 용호의 끝자락이 잘 관쇄되어 안쪽의 생기를 잘 갈무리 해준다. 원래 이곳은 봉황포란형국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라 주변의 풍수인들은 누구나 한 번쯤 간산 장소로 다녀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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