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106년 전 ‘대한독립만세!’ 외침소리가 한반도 방방곡곡에서 태극기와 함께 울려 퍼졌다. 그리고 2025년 오늘 전국에서 모여든 애국(?) 시민들의 대규모 집회가 서울 도심 여기저기를 가득 메웠다. 태극기를 든 손은 같은데 외침은 서로 달라 대통령 탄핵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가 팽팽히 맞섰다. 엄청난 규모의 집회에서 보이는 모습은 앞선 이나 따르는 이나 그들 모두는 절대 굽힐 수 없는 확고한 신념에 차 있는 듯하다. 그런데 생각이 모자라는 나는 아직도 혼란스럽다. 상대방의 주장은 무조건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고집하는 것이 옳은가. 옳고 그름의 잣대가 부족할 수 있는 ‘나’의 인식에 기인하지는 않는가. 정녕 각자의 성향인 ‘진보’만이, 또는 ‘보수’만이 유일한 답안인가. 대통령 탄핵에 대한 의견은 달라도 자발적으로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어쨌든 나라 사랑하는 국민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집회에 참석하지 않은 나는 우유부단한 기회주의자이거나 자유민주주의 역사를 써가는 이 시대의 방관자임이 틀림없으렷다. 또 어쩌면 어느 한 쪽에 치우쳐 역사의 부역자(附逆者)로 낙인찍힐까 두려워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말한다. 정권 쟁취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여야 정치인 그 누구의 손을 들어준 들 무슨 소용인가.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다. 대한민국을 건국하자마자 이념으로 이 나라를 남북한으로 갈라놓고, 그 이념 찌꺼기로 동서의 지역감정을 부추기더니 이제 다시 국민들을 반쪽으로 나눠서 뭘 어쩌라고…???이규상자는 명오이고 본관은 월성이다. 문장과 글씨의 재능이 있었으며, 일을 꾸미고 도모함을 잘하였다. 1907년 정미 가을에 산남의진에 들어와 상영집사가 되었다. 동엄공이 의병들을 이끌 때 참모장으로 피임되었는데 명오의 임기응변과 기이하고 탁월한 계책에 대하여 모두들 탄복하였다. 동엄 정환직 대장이 순몰한 이후로부터 최세한을 따라 정순기, 구한서 등과 한 마음으로 힘을 다해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전투에 전진하였으나 그때마다 적들의 형세가 너무나 성대하여 연이은 전투마다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점차 군대의 기강이 문란하고 의병들이 흩어져 세력을 다시 떨치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한이 적에게 사로잡히고 자신 또한 붙잡혀 감옥에 갇혀서 고통을 받는 가운데 적의 고문에 의한 고통을 못 견뎌 샘재[泉嶺]에 몰래 묻어두었던 총기류와 군수품 등에 대한 정보를 누설함은 지혜로운 자의 실수지만 뉘우친들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고 말았다.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와 한을 머금고 죽었다.〈원문〉李圭相은 字明五요 月城人이라 有文筆之能하고 兼之以謀事之善하야 丁未之秋에 入陣爲上營執事하고 東广公時에 爲參謀將하야 臨機應變에 奇謀良策은 衆皆歎服이런이 自大將殉沒之後로 從崔世翰하야 鄭純基具漢書等으로 同心戮力하야 勇往萬陣이나 此時敵勢熾盛하야 連戰連敗하니 軍氣紊亂하고 士卒이 分散하야 勢不得復振이라 未幾에 世翰이 被執하고 身亦被執하야 繫獄苦楚之中에 漏泄泉嶺之祕藏은 智者之一失이라 悔之莫及也라 釋放而歸하야 飮恨而卒하다<山南倡義誌 卷下51~52p>李圭相 義士 略歷(이규상 의사 약력)李圭相(이규상)은 字(자)는 明五(명오)이오 관향은 月城(월성)이라 性稟(성품)이 淸雅(청아)하고 文學(문학)이 豐富(풍부)하였다 처음에 淸河(청하)지방을 책임지고 소모하였고 후에 入陣(입진)하여 上營執事(상영집사)로 있었고 피집되어 형기를 마치고 은신하여 광복운동을 협조하다가 逝去(서거)하다<山南義陣遺史47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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