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로지를 돌아 자호천으로 들어섰다. 이제껏 늘 보던 하늘과는 일단 달라보였다. 숲길로 접어들어 숲의 끝을 보았고, 편백나무 꼭대기에 걸린 방패연을 보았고, 날짐승을 사냥하는 삵을 보았고, 우로지에 들어찬 여명의 시간을 보았다는데서 연관된 그 느낌은 애초에 아니었다. 애꿏은 엉겅퀴를 걷어차자, 잎 가장자리에 크고 작은 가시들이 일제히 덤벼들어 치맛단에 박혔다. 깡마른 여자는 짜증 섞인 말로 투덜거렸다. 가시를 일일이 빼내면서 하룻밤을 새운 졸음이 그제야 무게로 다가왔다. 뭐라 납득이 되지 않은 하늘빛이 계절에 맞게 털갈이를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참으로 놀랍고 경이로웠다. 파스텔 톤으로 엷게 번져 은은하게 감정 선을 건드리고 있었다. 각자의 슬픔과 각자의 추억과 각자의 기쁨을 한 그릇에 버물려 올려놓은 최상의 풍경마냥 또 어디로 흘러가고 있었다. 몸에 작은 진동이 왔고 그것이 불면으로 인해 집중되지 않는 정신력에서 기인되었다고 판단해버렸다. 허나 자호천 백사장은 명료하게 빛났다. 하늘은 쉽게 자신을 내어주지 않지만, 백사장은 이미 바람자국이 선명하게 알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른 시각이라 생각했다. 모래알갱이에서 독하게 눈이 맞은 아침햇살이 푸른 지느러미처럼 자라고 있었다. 그만큼 발길이 끊긴지 오래인 것처럼 순백의 뼈를 묻는 바람 넝쿨이 말라가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할 피로감이 급격히 몰려왔다. 빨리 소파에 큰대자로 뻗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을 때 한 무리의 사막상인이 눈에 들어왔다. 신기루를 본 듯 눈을 비볐다. 눈가에 달라붙은 엷은 막이라도 제거하고 싶은 마음이 컸을까. 낙타 한 마리가 여럿사람을 인도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거기다가 자호천 백사장에서 낙타 주위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상인이 가당치나 한 것일까. 깡마른 여자는 처음에는 비명을 질렀다. 주변에 누가 있다면 믿기지 않는 이 사실의 증인으로, 같이 나서주길 기대했다.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고, 비명소리에도 꿋꿋하게 전진하는 사막상인이 제공하는 공포감에 떨어야만 했다. 신기루인지 알 수 없지만 제대로 갖춘 복장에서 사막상인이라 단정하게 되었다. 낙타 등에 탄 터번을 두른 근엄한 한 남자와 고삐를 쥔 또 한 남자와 뒤를 따르는 또 한 남자는, 영락없는 영화 속 사막상인이었다.
이제 그들로부터 멀리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맞닥뜨린 여자를 팔아넘기는 상인이라는 생각에, 등장부터 수상한 사막상인을 피해 혼쭐이 나도록 달리기 시작했다. 살기위한 달음박질은 젖 먹던 힘까지 필요로 했다. 숨이 턱에 닿도록 지하실 입구까지 뛰어가 흘깃 뒤를 돌아봤다. 혹시나 사막상인이 뒤따르지 않을까하는 우려와 걱정으로 나무문짝에 힘겹게 중심을 실었다. 변화에 인색한 세상이 배경처럼 펼쳐져 있었다. 한가한 구름이 떠다녔고 힘줄 고운 햇살이 빗살무늬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구름이 착각을 불러오게끔 했을까. 깡마른 여자는 다시 한 번 비명을 질렀다. 지하실 통로로 접어들면서 혼란스러운 자신의 뺨을 가볍게 쳤다. 허기를 느끼다 못해 연신 꼬르륵 거리는 뱃속을 데리고 백열전구 불빛을 따라 걸었다. 필라멘트가 깜빡 거리는 전구도 보였지만 지금 급한 것은 빈 뱃속을 무지막지하게 채워놓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 그래야 사막상인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이런 황당한 방황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지하실에서 벗어나 거실로 들어갔을 때 남아있던 엉겅퀴 가시를 빼내고, 라면에 식은 밥을 말아 게 눈 감추듯 배를 채운 뒤 시체처럼 잠이 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