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창에 비친 앞산 그리메에 연한 보랏빛이 섞여 간다. 해가 막 졌다는 표시다. 이때 서쪽으로 난 쪽문을 열면 하늘에 온통 붉은색, 보라색 물감이 번져 있다. 시골에 내려오고 나서 업은 가장 큰 깨달음은 크고 넓은 하늘이 온통 내 차지란 것이다. 머리 위로 끝없이 펼쳐져 내게 미소를 보내고 있는 하늘. “난 네 친구야.”아침에 막 동튼 하늘 끝으로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중천으로, 다시금 서편 하늘로 넘어가는 해의 발걸음 소리가 귀에 들린다면 독자 여러분은 믿을 수 있으실까?아침 식사 시간이 빨라진 것도 변화의 일부분이다. 새벽녁에 눈을 뜬 후 현관문을 열고 나가서 집 주위를 돌아보고 나무를 살펴보고 발바닥에 느껴지는 잔디의 폭신함을 즐기다 보니 아침 운동이 충분히 되었나 보다. 배고파 서둘러 아침밥을 준비하게 된다. 닷새 전에 경북 영천시 고경면 추곡길로 이사 왔다. 용전1리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남편의 증조부께서 지으신 100년 가까이 된 고택을 손본 후, 건너 채 터에 두 사람이 살 집을 지었다. 22평으로 완공되어 입주하고 보니 크지도 작지도 않게 알맞다. 안방 하나에 거실과 부엌은 넉넉하게, 부엌 옆에 광 겸 부엌방을 하나 장만했다. 화장실도 하나, 특이한 점은 안방 옆에 드레싱 룸을 자그마한 대로 하나 설계했다는 것이다. 반 평 정도지만 미닫이 장도 있고 화장대도 있어 나의 비밀의 공간이 되었다. 부엌방에는 서향의 뒷마당으로 나갈 수 있는 쪽문이 있다. 22평의 공간 어느 곳 하나 허술한 곳이 없다. 집을 지을 때 설계 단계부터 신중하게 숙고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 만족스럽다. 고택이 남향이라 우리 새 집은 동향으로 짓게 되었지만 남쪽에 큰 통창을 내었다. 동쪽은 앞에 넓은 툇마루를 내어 유리문을 열고나갈 수 있게 했다. 그러니 거실의 남쪽과 동쪽 전체가 유리로 되어 있는 셈이다.남쪽은 아름다운 전경을 자랑하고 있는 까닭에 대부분의 거실 가구들은 남쪽을 바라보게 배치했다. 시증조부께서 지으신 특별한 정자 침수정이, 그리고 그 정자를 둘러싸고 있는 작은 산이 내가 아름다운 전경이라 부르는 바로 그곳이다. 옛날 증조께서 침수정에서 기거하고 계셨을 때, 갑자기 홍수가 났더란다. 그래서 본채에서 줄을 그곳까지 매어 바구니로 어른의 식사를 보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는 곳이다. 엊그제 면사무소에 가서 전입신고를 했다. 3인 이상 전입해서 6개월 동안 전출을 하지 않는다면 20만원의 지원금을 준다고 한다. 여기서는 사람 하나하나가 소중하단다. 젊은이는 모두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있는 시골이다. 오늘 일본 TV에서 사람이 사라져가는 시골에 대한 특집 방송을 한 것을 보았다. 시골에 내려가 살겠다고 할 때 모두들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서울서 나고 자란 내가, 시골에서 잘 살아낼 수가 있을까? 하는 시선이다. 내가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던 것은 최근 남편의 직장 때문에 가 있게 된 시골 생활을 성공적으로 보낸 경험 때문이다. 그때도 지금처럼 서울에 짐을 일부 남겨 놓고 화순에서 생활했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름처럼 온화하고 순한 화순에서 전라도의 따뜻한 인심을 푹 만끽하고 돌아왔다.남편이 퇴직한 지금, 남편의 탯자리인 이곳 영천이 내게 제2의 고향이 되려 한다. 가끔씩 묘사 때 내려온 것이 전부인 영천이 처음엔 낯설고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맨 처음 친구가 되어준 크고 넓은 하늘이 있으니 제2, 제3의 친구들이 곧 생길 것 같은 기대가 가득하다. 오늘도 새벽녘을 수놓은 하늘의 조화에 감탄한다. 붉은 빛과 푸른빛이 섞인 하늘 바탕에 흰 구름 빛이 섞인 현란한 색채가 황홀하다. 아침마다 첫 번째로 만나는 친구의 방문이다. 안녕, 내 친구! (2017년 8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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