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산 13-10번지에 가면 세종대왕의 비인 소헌왕후의 아버지이며 조선 초 영의정을 지낸 심온(1375~1419) 선생의 묘가 있다. 그는 청송 심씨 시조 심홍부의 5세손으로 고려말 11세에 진사(進士)가 되고 문과에 급제하였다. 고려말부터 관원 생활을 하다가 조선 개국에 참여하여 본격적인 관직 생활을 했다. 개국 후 조선 태조 1년(1392)에 병조와 공조정랑을 거쳐 태종 13년(1413)에는 대사헌, 이듬해 형조, 호조판서와 한성부 판윤을 지냈다. 그리고 세종 원년(1418)에는 왕의 장인으로 청천부원군(淸川府院君)으로 봉작됨과 동시에 영의정에 올랐다. 그해 9월에는 세종의 즉위를 알리기 위해 명나라에 사신사로 가는데 수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때 태종은 왕권 강화를 위한 정책으로 외척을 철저히 배척하였으며 자신의 처남인 민씨 형제들을 모두 죽이고 훗날의 외척인 심온의 아우 심정 등에게도 불경죄를 씌워 처형하였다. 이후 사태가 일단락되는 모습을 보였으나 심온이 명나라에서 돌아오자 그마저 의금부로 압송하여 태종이 보낸 사약으로 죽게 하였다. 이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당시 좌의정 박은과 영돈녕부사 유정현 등의 무고로 인한 음모였기에 심온은 죽기 전 나의 후손은 절대로 반남박씨와는 혼인을 하지말라는 유언까지 남겼다고 한다. 그는 세종대왕의 장인이면서도 상왕인 이방원에게 사약을 받고 죽은 비운의 주인공이다. 청송 심씨는 조선조의 명문가로 대대로 명당에 묘 잘 쓰기로 유명했다. 시조 심홍부의 묘는 경북 청송에 있고, 2세 심연의 묘는 전북 익산, 3세 심용은 경기도 안성, 4세 심덕부의 묘는 경기도 연천에 있는데 이 모두가 명당으로 소문나 있다. 수원 광교 역사공원 내에 있는 심온의 묘소는 세종이 직접 상지관 이양달을 시켜 소점한 자리이고 이 묘소는 1979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곳의 산세는 한남정맥인 용인시 광교산(581.2m)에서 남동쪽으로 지맥을 뻗어 내려와 매봉재를 지나기 전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에서 하나의 봉우리(230m)를 일으켜 주산이 되었다. 묘소는 주산에서 남남서 방향으로 지현굴곡(之玄屈曲)을 하며 뻗어 내려온 용맥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지금은 묘역 전체가 광교역사 공원 부지이나 광교신도시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청룡·백호가 잘 감싸주고 물이 환포 하였다. 이곳은 혈의 사상(四象)으로 보아 유혈(乳穴)의 혈장으로 혈증인 입수(入首)와 좌우 선익(蟬翼) 그리고 앞쪽으로는 혈장의 기운을 받쳐주는 전순(氈脣)까지 갖추고 있다. 그리고 전순 아래로는 작은 요석(官星)들이 10여 개나 박혀있어 혈장의 기운을 잘 갈무리해주고 있다. 수세는 우측 백호 자락에서 흘러나온 물들이 제법 큰 하천인 여천을 이루고 여천은 공원 전체를 감싸며 흘러 좌측 원천호수로 흘러든다. 여천 옆에는 여의주처럼 동그란 독산도 하나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이곳의 혈장을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놀고 있는 황룡농주형(黃龍弄珠形)의 명당 길지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의 현황은 혈장 뒤편으로 영동고속도로가 관통되면서 내룡맥이 잘려 묘역으로 공급되는 지기맥이 단절된 상태라 도시개발로 인한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