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庖)’는 ‘요리하다’ 또는 ‘음식을 만드는 공간’을 의미- ‘주(廚)’는 ‘음식물을 보관하는 공간’을 의미- ‘포주(庖廚)’, ‘주사(廚舍)’, ‘포사(庖舍)’ 가정의 부엌이 아니라, 왕실과 관청의 조리 공간을 뜻하는 용어로도 사용- ‘주사(廚舍)’는 부엌인 조리 공간과 연결된 건물을 가리키는 용어- ‘포사(庖舍)’는 사찰에서도 사용되었던 용어로, 불교 사찰에서 승려들의 공양을 담당하던 공양간을 의미하기도 함   조선시대 여성의 대부분의 생활공간은 부엌이다. 부엌은 단순히 요리 뿐만 아니라, 여성의 삶과 지위, 조선 시대의 여성문화까지 포함하는 중요한 장소로 일반적으로 여성의 공간인 안채에 위치하고 있었다.집안에서 조선 여성의 주요 활동 지역이기 때문에 하루 일과의 대부분이 부엌에서 시작되고 부엌에서 마감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현재 부엌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유교적 가부장제 아래에서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곳으로 조선시대 남성의 영역과 중첩이 되지 않는 유일한 공간이다. 영천지역의 부엌에 관련한 역사자료나 문헌을 통해 조선 여성의 삶과 사회적 연결을 갖는 중요한 공간인 부엌인 포주(庖廚) 주사(廚舍) 포사(庖舍)를 살펴보면 지역의 향토 백과사전 격인 ‘영양지 永陽誌’에 “1482년 영천군수 신윤종(申允宗) 명원루明遠樓를 중수하고 부엌(포주庖廚) 9칸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객사(客舍)나 향청·연향(宴享) 문화가 남아있는 조양각과 같은 공공시설에서 손님을 접대할 공간에 위치하고 있다. 이는 지방 관청이나 그에 준하는 건물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음식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또 하나의 자료인 영천향교 숭열당 실측조사보고서(2000년) 기록에서 향교의 부속 건물로 조선후기 음식과 관련한 ‘포주(庖廚)’, ‘주사(廚舍)’, ‘포사(庖舍)’ 등의 수리에 관한 자료가 보이고 있다.“1768년(영조 44) 8월에 포주(庖廚)에 사용할 철와(鐵瓦)를 만들었다는 기록”“1868년(철종5) 8월에 양현(養賢)에게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학궁(學宮)안에 포주(庖廚)를 설치”“1888년(고종25) 1월 주사(廚舍)의 지붕을 덮었다.”“1890년(고종27) 4월 17일 포사(庖舍), 대문 3칸, 문루(門樓)를 221량(兩)으로 중수” “1929(기사 己巳) 7월 15일 포사(庖舍) 서협(西夾)이 기울어진지 오래되어 전복될 위험이 있음을 관에 알리고.” 등 여러 기록이 남아있다.음식 조리와 관련해서 일한 인물의 명칭과 관련해서 영천역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후기 영천지역 <병적기록부>에서는 주역(廚役)을 담당한 병기(丙奇)라는 사노비가 보이고 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기록을 통해 지역의 생활문화와 음식문화를 연구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영천의 부엌, 즉 ‘포주’는 단순한 조리 공간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문화와 역사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공간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조선시대 영천 지역의 생활상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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