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원과 사당 (院祠)임고서원(臨皐書院) : 고을 북쪽 아천리(阿川里)에 있다. 문충공(文忠公) 정몽주(鄭夢周 1337~1392)를 제향하며, 가정(嘉靖)349) 계축년350)에 처음 부래산(浮來山)351)에 세워 사액(賜額)352)되었다. 임진왜란 뒤 임인년353)에 도일동(道一洞)으로 옮겨 세웠다. 이러한 사실이〔조정(朝廷)에〕알려져 다시 사액되었다. 숭정(崇禎)354) 임오년355)에 문강공 장현광을 배향하였으며, 정조 병오년에 충정공 황보인을 추배(追配)하였다. 〔임고서원을〕 창건한 사람은 고을 사람들인 노수(盧遂), 김응생(金應生), 정윤량(鄭允良)이고, 옮겨 세운 사람은 고을 사람들인 정세아(鄭世雅), 이희백(李喜白), 정담(鄭湛), 박점(朴點), 김취려(金就礪), 이효남(李孝男), 손우남(孫宇男), 정사진(鄭四震)이니, 이러한 사실은 포은집(圃隱集)356)과 본 원(院) 고왕록(考往錄)에 실려 있다. 고종 무진년에 훼철되었으나 지금은 영정을 봉향하고 다시 강당을 다시 지었으니, 중건(重建)한 고을 사람은 서정옥(徐廷玉), 이벽(李璧), 조병문(曺秉文), 정진돈(鄭鎭敦)이다. 서원 안에는 내사(內賜)357)된 성리학 군서(群書)가 갈무리 되어 있는데, 퇴계선생께서 소지(小識)에 이르기를 “영천의 상사(上舍)358) 노수(盧遂)가 상사 김응생(金應生), 수재(秀才) 정윤량(鄭允良)과 더불어 포은 선생께서 살던 옛 터에 서원을 지을 구상을 하고서는 노(盧)군을 보내 서울에서 널리 서적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그 뜻을 매우 가상하게 여기고 그 일을 높이 평가하였다. 돌아보면 객지에서의 삶이 쓸쓸하여 다른 책은 없어, 가히 도움을 〔주기 위하여〕 삼가 임금님으로부터 받은 성리군서(性理群書) 한 질(帙)을 주었으니, 혹여 임금께서 〔주신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것에 대하여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아! 서원(書院)을 위하여 〔이 책들을 잘〕받들어 보관하여 한편으로는 선현(先賢)을 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후학들을 위해 사람들에게 준다 말하노라”라고 하였다.(원문)臨皐書院 在郡北阿川里 享文忠公鄭夢周 嘉靖 癸丑 始建于浮來山 賜額壬辰兵燹後壬寅 移建于道一洞 事聞 復賜額 崇禎壬午 配享文康公張顯光 正租丙午 追配忠定公皇甫仁 創建 鄕人 盧遂 金應生 鄭允良 移建 鄕人 鄭世雅 李喜白 鄭湛 朴點 金就礪 李孝男 孫宇男 鄭四震 事載圃隱集及本院考往錄 高宗戊辰撤 今奉享影幀 復設講堂 重建鄕人 徐廷玉 李璧 曺秉文 鄭鎭敦 院內藏內賜性理群書 退溪有小識曰 永川 盧上舍遂 與金上舍應生 鄭秀才允良 於圃隱鄭先生生舊居 倡構書院 垂成盧君爲來京師 博求書籍 滉甚嘉其志而慕其事 顧旅寓蕭然無他書 可以相副 謹以頃所受 內賜性理群書一秩 贈之 或以君賜與人爲疑 噫爲書院奉藏 一以爲先賢 一以爲後學 與人云乎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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