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종의 태(胎) 항아리를 수호사찰 중종16년(1521)년 조성 · 조선 12대 대왕인 인종은 재위기간(1544 ~ 1545년)이 8개월 아주 짧은 재위기간· 인종의 친누나인 효혜공주(1511~1531)는 이름은 옥하(玉荷)· 효혜공주가 죽고 난 뒤 1531년 처음으로 ‘묘법연화경’ 간행· 임진왜란으로 ‘공산본사’에 관련된 기록은 망실· 공산본사(1531년 경)-백지사(1592년 경)-백흥암(1772년 이후)으로 불려짐백흥암은 대한 불교 조계종 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산내 암자이다. 사찰의 가람배치는 주전각은 마당을 중심으로 극락전(極樂殿)과 보화루(寶華樓)가 서로 마주 보고 있고, 바라보는 좌측의 진영각(眞影閣)과 승당인 심검당(心劍堂)이 좌우로 배치되어 있다. 임진왜란이 끝이나고 1643년 극락전을 중수하면서 아미타 삼존불을 조성한 것은 백흥암이 아미타신앙을 중심으로 수행도량을 계획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는 비구니 스님의 도량으로 엄격한 수행정진이 실현되는 도량으로 알려져 스님들의 수행기간이 아닌 해제 철에만 들어가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찰로 알려져 있다.백흥암을 올라가기 전 초입인 신일지 저수지에서 운부암과 백흥암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산속의 삼거리교차로에서 길을 비켜, 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에 인종 태실을 알리는 작은 이정표가 보인다. 가파른 산길을 따라 800m 정도 오르다 보면 조선 12대 대왕인 인종태실이 나타난다. 태실 조성 시기인 1521년 경에는 공산본사(公山本寺)라는 이름으로 막중한 수호 임무와 팔공산에 가장 으뜸 사찰의 위상을 100년간을 지닌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이후 조선시대 영천지역 간행불서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은 공산본사에서 1531년과 1535년에 각각 간행된 목판본 7권 7책의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과 목판본 1책으로 간행된 ‘수륙무차평등재요의촬요水陸無遮平等齋儀撮要’가 있다.이 불서의 간행 배경으로는 1521년 팔공산 백흥암에 인종의 태실이 봉안되고 왕세자의 안위를 기원내지 효혜공주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간행된 것으로 ‘묘법연화경’은 왕실판인 을해자 번각본 가운데 가장 빠르게 보이는 사찰간본이다. 이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시작으로 많은 불교서적이 간행되는데 아래와 같다.공산본사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 간행된 이후 같은 해에 전라 중대사 와 충청 무량사, 1537년 전라 용천사, 1555년 충청 광덕사, 1562년 전라 쌍봉사, 1564년 황해 패엽사, 1572년 전라 무위사, 1631년 경상도 수암사 외 미상 3종 등이 을해자 번각본으로 간행되었다.공산본사 묘법연화경은 조선중기에 간행된 을해자계본 복각본으로서는 가장 빠른 본이라는 점과 원간본과 비교해보면 판각이 정교하고 원간본의 특징을 매우충실하게 반영했다는 점은 활자본에서 목판본으로 변화하는 과정의 판각기법과 인쇄과정 등 여러 가지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총 7장으로 구성된 변상도(경전화)는 그림을 그려 판각한 모습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찾을 수 없을 만큼의 정교하고 잘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찾아 볼 수 있다.조선 중기 영천지역사회의 인쇄문화사에 있어 큰 변화와 충격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 지역에서 75년간 11종의 책을 간행한 사례는 극히 드문 것으로 팔공산 지역 사찰에서도 없는 사례로 조선전기와 조선후기를 이어주는 영천 서지간행에 있어 중요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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