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최악의 국가재난이다. 우리 어릴 적 동네 산은 앞산, 뒷산은 물론이고 꽤 먼 산까지 나무들은 땔감으로 벌목 당해 거의 벌거숭이였다. 불과 4~50년 만에 우리나라 산은 자랑스런 녹화(綠化) 현장이 되었다. 그러나 계획된 조림은 적고 대부분의 산림은 방치로 인해 밀림처럼 우거진 숲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 따지자면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진 것도 위정이 재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이다. 정치가 사라진 마당에 무얼 기대할까마는, 조속히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을 위한 구호대책을 수립함은 물론이고 기왕지사 불타버린 산림에 대해 근본적인 백년대계를 세워 법안부터 제정할 일이다 국회의원은 당권쟁취가 아니라 나라걱정을 하라고 국민들이 뽑은 대리인들이다.최기보자는 태경이고 초명(初名)은 록이며 본관은 전주이다. 성품이 굳세고 절조가 있으며 담력과 지략이 있었다. 처음 산남의진이 꾸려졌을 때 우포장이 되었다. 지포 이한구는 일찍이 “차라리 백 명의 범상한 사내를 잃을지언정 최록 한 사람만은 잃지 않으리라.”라고 하였다. 1907년 정미에 대장의 신임을 얻어 장영수위가 되어 군중(軍中)의 서책(書冊)을 혼자 휴대하고 갈무리하는 일을 맡았으며 일이 실패한 뒤에는 드디어 자신의 몸을 감추었다.〈원문〉崔基輔는 字泰卿이요 初名錄이라 全州人이라 性이 耿介有膽略하야 擧事之初에 爲右炮將하다 芝圃李公이 嘗曰寧失百夫언졍 勿失崔錄一人라하다 丁未之年에 爲大將之所信任하야 爲將營守衛하고 軍中書冊을 獨擔携藏하고 事敗後에 遂隱身하다  <山南倡義誌 卷下53~54p>                                                                崔基輔 義士 略歷(최기보 의사 약력)崔基輔(최기보)는 字(자)는 泰卿(태경)이오 관향은 全州(전주)이고 仁齋先生(인제선생) 十三世孫(십삼세손)이라 高宗(고종) 辛巳(신사)에 現迎日郡竹長里第(현영일군죽장리제)에서 出生(출생)하다 性稟(성품)이 剛勁(강경)하고 膽略(담략)이 있었다 南營兵丁(남영병정)에 入隊(입대)하였다가 倭敵(왜적)들의 野蠻(야만) 行動(행동)에 激憤(격분)되어 祖國(조국)을 救出(구출)하기를 盟心(맹심)하고 脫營(탈영)하였다 乙巳(을사) 冬(동)에 산남의진이 일어날 때 公(공)은 남먼저 들어와서 各(각) 地方(지방)의 연락을 담당하여 인원모집과 물자징발에 많은 활약을 하였고 丙午年(병오년)에 右炮將(우포장)으로 있었고 丁未年(정미년)에는대장의 신임을 얻어서 將營執事(장영집사)로 임명을 받고 將營(장영)을 守衛(수위)하면서 서류일절을 보관하였고 戊申年(무신년)에는 左炮將(좌포장)으로 임명을 받고 陣頭(진두)에 활약하였다 庚戌年(경술년)에 이르러 조국은 왜적의 영토로 되고 의병진은 지하공작으로 들어가서 광복운동으로 전환되었다 公(공)은 窮巷僻村(궁항벽촌)에 隱居(은거)하여 옛날 同志(동지)들을 손잡고 조국광복에 이바지하다가 乙酉(을유) 八一五(팔일오)를 맞이하여 丙午(병오) 二月(이월)에 山南義陣(산남의진) 先烈(선열)의 慰靈祭(위령제)를 참석하고 仝年(동년)에 山南倡義誌(산남창의지) 發刊(발간)하는데 참관하여 同事(동사)하던 동지들을 아는 데로 發現(발현)시키고 太平(태평)을 기다리다가 不幸(불행)하게도 국토가 중단되고 민족이 분열되는 것을 보고 슬퍼하더니 이것이 病(병)으로 되어 많은 恨(한)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나다<山南義陣遺史454~455p>최기보 의사 공훈전자사료관 공훈록1905년 경북 죽장(竹長) 등지에서 군기(軍器)와 의병을 모집하였으며 1906년 산남의진(山南義陣)에서 장영수위(將營守衛)와 右炮將(우포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1905년 9월 산남의진에 납총 등을 모집해 제공하고 1906년 3월 산남의진의 봉기 이후 의병 모집과 무기 수집 공로를 인정받아 장영수위와 우포장 등으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산남의진은 일제의 간계로 의병장 정용기(鄭鏞其)가 체포되면서 7월에 해산되었다. 이후 정용기의 석방을 계기로 산남의진은 1907년 봄 재결성하여 항전을 계속하다 정용기가 전사하자, 정환직(鄭煥直)이 산남의진을 수습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해 12월 정환직도 체포되어 순국하면서 산남의진이 해산되자, 최기보는 산간벽지에 은거해 있다가 해방을 맞이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즐겨찾기+ 최종편집: 2025-07-02 01:56:41 회원가입 전체기사보기 원격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동정
이 사람
데스크 칼럼
가장 많이 본 뉴스
상호: 경북동부신문 / 주소: 경상북도 영천시 최무선로 280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264 / 등록일 : 2003-06-10
발행인: 김형산 / 편집인: 양보운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보운 / 편집국장: 최병식 / 논설주간 조충래
mail: d3388100@hanmail.net / Tel: 054-338-8100 / Fax : 054-338-8130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