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내려 온 지 얼마 안 되어 서울에 일이 있어 가게 되었다. 일이란 남편의 국제회의 참석인데 나 또한 참석자들의 부인을 대접하는 일을 맡게 된 것이다.회의의 이름은 APAP FORUM인데 필리핀인 부인들과 대화하는 와중에 그들이 이 모임을 아프아프 포럼이라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름을 줄여서 부르는 것은 만국 공통인가 보다. 아시아 퍼시픽 어그리컬처 폴리시 포럼이다. 태평양 연안 국가 농업 정책 연구단체라고 하면 설명이 되겠다. 남편이 FAO(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 필리핀 대표로 있던 16년 전부터 필리핀과 우리나라 주변 국가에서 농업직을 맡고 있는 관리나 학자들이 함께 모여 만든 민간 단체다. 현재는 아시아에서 14개국이 참가하고 있고 아프리카 30개 국이 참가하는 다른 모임과도 연관이 되어 있어 참가국은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어려움에 처한 농업과 농촌에 대한 진지한 활로 모색이란 주제는 세계 모든 곳에서 고민해야 하는 공통점인가 보다. 이런 민간 국제 단체와 관계를 맺다 보면, 상호간의 관심사에 공감을 느끼거나 배운다는 차원을 넘어 개개인의 생각과 신념이 거대한 하나의 흐름을 만든다는 것을 깨닫고 놀라게 된다. 16년째 초가을에 열리는 이 회의에 외국인 부인들은 전부 세 사람이 참석했다. 두 명의 필리핀 회원 부인과 한 명의 인도네시아 회원 부인이다. 형편이 어려운 나라가 많아 대표 혼자서만 참석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주최국에서 부인 항공료까지 지원 하지는 않으므로 개인의 비용으로 오기 때문이다.하지만 이틀간 부인들의 관광 비용은 한국 측이 부담한다. 주최 측에서 보내준 운전기사 겸 여직원 한 사람과 나까지 한국인은 두 명. 합해 다섯 명이 보내는 일정이다.현재의 서울을 가장 잘 보여주면서 그들이 좋아하는 쇼핑도 할 수 있는 코스는 어면 것일까? 고민 끝에 고속터미널 상가와 인사동, 남산 타워를 첫날에 가고 다음 날은 잠실 롯데 타워와 명동에 가기로 했다. 터미널 상가에서 손님들은 옷보다 화장품을 많이 샀다. 인사동에 가서 아기자기한 한정식을 먹은 것은 성공. 점심 먹은 후에 친지들 선물 사기에도 역시 인사동이 좋았다. 3시 경 남산 타워로 자리를 옮겼다. 타워로 가기 위해 케이블카를 탄 것도 좋았던 것 같다. 남산 타워 앞 광장에서 조선시대 무사들이 군무를 필치는 쇼를 구경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에게 뜻밖의 선물이었다.타워에 오르고 난후 찻집에서 좋아하는 음료를 주문하고 이야기하는 짬을 가졌다. 이 휴식이 무엇보다 인상 깊은 소통의 시간이 되었다. 그리 유창하지는 않지만 모두가 영어를 할 줄 알았다. 인도네시아 부인은 한국이 처음이란다.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고 한국 가수들 이름을 알 정도로 이곳을 좋아하는 그녀는 이번 여행이 너무나 기쁘다고 말했다. 그녀는 필리핀 부인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그들의 말이 자기들 말과 똑같은 것이 있다고 신기해 했다. 예컨대 ‘싸이양!’ 맛 난 케이크를 먹다가 한조각 떨어뜨리면 “싸이양!”하며 그걸 주워 먹는다는 것이다. 우리말의 ‘아까워’와 같은 말인가 보다. 인도네시아 말의’ 싸이양’이 필리핀의 ‘싸이양’과 같은 뜻, 같은 발음이란 것이다.나는 이웃의 두 나라 말이 같다는 점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한국 여자들도 똑같이 쓰는 말 ‘아까워’ 하는 여자들의 심리가 세계의 많은 여자들과 같다는 사실이 또한 신통했다. 그녀들은 또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영어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서로 자신의 모국어를 가지고 있지만 소통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가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한국의 찻집 어느 구석에서 세계의 여러 국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의 생각을 남에게 이해시키고 있다니... 멋진 일이라고 생각됐다. 다른 언어의 친구들도 서로 소통하려고 노력하는데 내가 영천에 가서 경상도 사투리일지라도 우리말을 하는 상대방과 소통할 수 없다면 말이 안 되겠지? 라고 생각했다.오늘 서울의 남산타워에서, 세계가 내게 친구로 왔다. 안녕, 내 친구! (2017년 9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