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여자(30)창밖을 향해 점령군처럼 찾아든 봄기운이 싸락싸락 자기자리에서 안성맞춤으로 둥지를 틀고, 놀랍고도 신기한 새로운 생명들로 가득했다.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물씬 느껴지는 자호천과 백사장과 끝이 보이는 우로지의 물살이 변신을 하듯 덩치가 커지고 있었다. 수피아가 그림자처럼 등 뒤에 달라붙어 온몸을 쓸어내렸다. 나눌 수 있는 체온을 실은, 가늘고 작은 손가락은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면서 사뭇 뜨겁고 그녀의 손바닥은 알 수 없는 부호들을, 늙은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아저씨가 곁에 있어서, 더 독하지 않은 세월이 고마워요.”하긴 산을 깎아 지은 단독주택에, 백년 가까이 된 목조건물에, 돌보지 않아서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아 폐가처럼 보인다면 어느 정도 수긍하게 될 것이다. 등산객들이 가끔 지나갈 때가 있었다. 그들의 말소리는 신기하게도 집안에서 또렷하게 뚫고 들어왔다.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수북하게 먼지 앉은 창가에 동그랗게 뜬눈으로 최대한 집안을 파악하고 싶어 했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등장한 왕자처럼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찾기라도 하듯 분주하게 동태를 살폈다. “이런이런, 빈집 같은데 이상하게 정돈이 되어있어.”“설마! 이렇게 적극적인 자세로 무너져가는 집에서 사람이.”“간이 배 밖으로 나왔으면 몰라도 소름끼치는 이 집에서 산다는 것은 기적이야.” 수피아가 소파등받이 뒤에 숨어서 ‘큭’하고 웃었다. 덩달아 숨어서 ‘큭큭’ 나도 따라 웃었다. 한 번도 이 집을 떠나서 산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그녀가 소파등받이 밖으로 손을 흔들어보였다. 서프라이즈 하려는 의도에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게, 창문에서 보았을 때 가장 잘 보이는 각도로 흔들어주었다. 그리고 이내 흔든 손을 숨겼다. “어어, 뭐야? 봤지? 봤지?”“뭐가 움직였어.”“가자, 헛개 보이는 역시 기분 나쁜 집이야. 얼른 가!” 일순간 적들을 물리친 개선장군처럼 수피아는 소파등받이 뒤에서 용감무쌍하게 나를 안았다. 죄여드는 힘에 멈칫거리면서 힘의 안배에 동참해주었다. 혹시 등산객들이 아직 창가를 떠나지 않고 호기심어린 시선을 박고 있더라도 하등 상관없는 일이었다. 우린 결코 불법은 아니니까, 더더욱 불륜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다만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집에서 산다는 것과, 연인 사이지만 마흔 살 차이나는 것 외에 정당하게 떳떳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집이 무너져도 우리가 깔려죽는 것이고, 나이차이도 불편함이 없다면 종족번식을 위한 노력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찬 기운이 확 걷혀진 초여름 어느 날엔 집수리업자를 불러 쇠말뚝을 집주변으로 두르고, 생경 맞게 쇠사슬로 바투 칭칭 맨다면 입방아에 오르내릴 화제꺼리가 될 수 있을까. 더욱 집안이 호기심으로 가득하게 무성한 풀도, 무성한 나무도 얽히고설키게 뿌리내려, 버려둔 집처럼 생각에 꼬리를 물도록 그렇게 만들면 어떠할까. 세월에 켜켜이 쌓이도록 인기척도 꽁꽁 숨은 견고한 빈집으로 바람이거나 구름이거나 귀신쯤으로 여겨도 될 산다는 것에 한발 물러서 있으면 어떠한가. 등산객들의 발소리, 말소리가 목멘 숨소리로 들려와도 우리의 섹스는 멈출 수 없다고, 한번쯤 믿어줄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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