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 뒷산에 가면 조선 전기의 문신이며 인천채씨 중시조 채신보의 묘가 있다. 그는 1438년(세종 20)에 18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하고 함창 현감을 거쳐 음성 현감과 1482년(성종 13)에는 남양 도호부사를 지냈다. 훗날 관직을 그만두고 처가가 있던 음성군 원남면 물 언덕에서 소산정사(梳山精舍)를 짓고 지내다가 향년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 강희맹과 친분이 두터워 강희맹이 「梳山精舍記(소산정사기)」를 썼는데 그 내용을 보면 채신보의 일면과 그의 성품이 잘 나타나 있다. 그의 묘소는 이 마을 뒷산에 모셔져 있는데 성묘를 하러 가면 반드시 호환을 당한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복호형(伏虎形) 명당으로 알려진 이 묘역은 채신보가 벼슬을 그만두고 여생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나 묻힌 곳이다. 아들 채수는 조선왕조 500년을 통털어 단 두 명밖에 없다는 삼장장원의 한 사람으로, 대사성과 호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젊었을 때는 한양에서 벼슬살이를 하느라 자주 성묘를 오지 못했고, 나이가 들어서는 함창과 음성이 너무 멀어서 3, 4년에 한 번 정도 문중 사람들과 성묘를 하러 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묫길에는 반드시 일행 중 누군가가 호환을 당하기 때문에 문중 사람들이 성묘오기를 꺼려했다는 것이다. 다음의 내용들은 『음성의 구비문학』과 『음성군지』 등에 실려 있는 이야기들이다. 어느 날 길지를 찾아 이곳을 방문한 지관이 채신보의 묘를 보고 탄식하기를, “관운은 자손 대대로 이르겠으나 호환을 막을 수가 없겠구나.” 하였다. 때마침 이 소리를 채씨 문중 사람이 듣고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을 하자 지관은, “채공의 묘는 산의 형세가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복호형이라 자손이 성묘를 가면 반드시 호환을 당하게 되어있습니다.라고 하였다. 후손들이 그 이유를 묻자 묘가 호랑이의 머리 앞에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후손들은 성묘를 할 때 채신보의 묘소가 마주 보이는 먼 곳에서 망배(望拜)만 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그 후로는 호환을 당하는 일이 없었다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구전은 복호형 명당을 강조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곳의 산세는 한남금북정맥의 보덕산(509.9m)에서 서쪽으로 하나의 지맥을 뻗어 내려와 묘소 뒤에서 230m의 봉우리를 일으키고 계속 내려온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수세는 북쪽의 소속리산(431.6m)과 북동쪽의 보현산(476.1m)자락에서 흘러내린 물들이 만나 초평천을 이루고 이 물들은 묘소 앞을 완전히 감싸면서 흘러나가니 혈장의 생기를 잘 갈무리해준다. 이렇듯 수세는 유리한 조건이지만 묘소 앞의 안산이 높아 흠이 되고 있다. 풍수서에 이르기를 복호형은 혈장 앞쪽에 호랑이의 먹이가 될만한 개나 소, 사슴 모양을 한 바위나 산봉우리가 있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혈장에 비해 앞쪽의 안산이 너무 높다 보니 호랑이의 먹이는커녕 오히려 혈장의 기운을 눌러 압박하는 형상이라 복호 형국에는 어울리지가 않는다. 그래서 배고픈 호랑이가 사람을 해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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