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최초의 활자조판방식 신문 <민간인쇄조보>· <민간인쇄조보>의 원고는 <필사조보>· “Newspaper is the first draft of history” -신문은 역사의 첫 번째 초안이다.· 올해 4월 7일은 신문의 날 69주년을 맞아· 지역신문에 첫 페이지는 지역의 역사이다.손으로 쓴 신문 필사조보(朝報)는 조선시대 임금의 동정과 조정의 공식적인 행정 운영 사항을 수록되어 필요로 사람에게 전달되었다. 이 조보의 내용은 명색이 사대부집안의 사람이라면 매우 궁금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어느 집 어른이 어느 지방의 군수나 현감으로 갔는지, 어떤 직책에 올라 어디로 자리를 옮겼는지 당일 날 바로 알고 싶은 소식들이 담겨진다.
대궐에 어떤 물건을 납품하거나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어느 부서로 옮겼는지, 누가 그 자리로 옮겨 왔는지, 궁궐에 어떤 물건이 필요한지 세상의 모든 일들이 손으로 쓴 신문 형태인 필사조보에 기록되어져 있다.중앙 정부의 인사내용이나 승진 · 파직 등 따끈따끈한 중요하고 민감한 내용들이 매일 아침마다 조보소(朝報所) 앞마당에 붙어 있어 글을 좀 안다는 사람이라면 보고 받아 적어서 어느 대감집이나 장사치 집 등 어느 곳에 배달하거나 전해 주어도 돈이 되는 매체였다.또한 각 지방 관서와 지방으로 내려가는 외관직 인사 내용 등 국정 운영에 관심이 많았던 식자층들에게도 널리 보급되었다. 승정원(현 대통령 비서실)에서 매일 발행하였는데, 임금의 통치와 관련된 정보를 전달하고, 중앙관리를 비롯한 지방 거주하는 관리와의 소통이라는 목적에서 존재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임금은 조보를 통해 원활한 국정의 상황을 위해 이 매체를 통해 전달하여 통치 체제의 강화라는 목적도 동시에 수행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위의 글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한 조보(필사)의 다른 이름은 기별(奇別 · 寄別)이다. 「선조실록」에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입으로 혹은 글로 전달하였던 것을 소식 및 통지를 의미하는 ‘기별’로 필사조보의 순수한 우리말 별칭이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일찍부터 조보가 운영되었을 것이라는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전해지고 있는 손으로 쓴 조보 대부분이 조선후기의 것으로, 조선 초기나 임진왜란 이전 필사조보의 실물이 없어 형태나 그 내용을 살펴보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영천역사박물관이 소장한 필사조보는 사진에서 보듯이 9점의 손으로 쓴 조보가 소장되어져 있는데 그 제작된 시기를 살펴보면
① 정조 22년(1798) 무오 12월 19일, ② 순조 11년(1811) 신미 6월 26일~ 30일 ③ 순조 12년(1812) 임신 7월 7일 ~ 8일, ④ 헌종 9년(1843) 계묘 1월 15일 ~ 19일 ⑤ 헌종 9년(1843) 계묘 1월 22일 ~ 27일 ⑥ 철종 12년(1861) 신유 2월 ~ 7월 ⑦ 철종 13년(1862) 신유 1월 5일 ~ 7월 5일, ⑧ 고종 13년(1876) 2월 14일 15일 ⑨ 고종 30년(1893) 9월 1일 ~ 9월 9일 등 조선 후기 약 100년 다섯 왕의 재위기간에 속한 필사조보가 소장되어져 있다. (다음호에도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