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여자(32)“117로 전화 좀 해줘요!”여자커플은 비명에 가깝게 소리를 질렀다. 112와 119는 알겠는데 117은...잠시 생각에 잠겼다. 혹시 시체 처리 담당반이 117일까. 여전히 낮은 자세를 유지하며 자신의 안전은 보장된 채 다시 소리를 질렀다. “117이 아니고 그 뭐죠? 아, 112에 신고 좀 해주세요.”몸을 숙일 타이밍을 놓쳐버린 깡마른 여자는 여전히 선자세로 주위를 둘러봤다. “휴대폰을 가지고 오지 못했어요.”자호천 기슭으로 뻗어있는 갈대 군락지 따라 물결이 넘실대고, 낯선 남자가 좁은 강폭으로 황급히 뛰어들어 달아나는 것이 목격되었다. 저 남자가 가해자라면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판단되었다. 호흡이 떨어지던 남자커플의 거친 신음마저 잦아지고 창백한 얼굴색으로 변해갔다. 눈앞에서 상상 이상으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은, 어디서부터 수습해야 할지 난감하고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범인이 달아난 것 같은데 일어나서 직접 112에 신고하세요!”여자커플은 울상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달아나는 범인을 봤어요? 범인이 달아났다는 것을 어떻게 단정 짓죠?”“강 건너편으로 한 남자가 뛰어가는 것을 봤어요. 혹시 근방에 있다면 난 이렇게 서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잖아요.”“그러네요.”몸을 일으킨 여자커플은 생각보다 한 뼘 큰 키였다. 이번에는 깡마른 여자가 올려다보며 손으로 전화하는 시늉을 해보였다. 대강 위치와 상황을 112에 신고한 뒤, 남자커플의 처참한 몰골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는지 발만 동동 굴리며 쉽게 다가가진 않았다. 아마 선혈범벅이 된 시체에 대한 두려움이거나, 옷에 피를 묻힐 것 같은 염려성이거나, 애정이 식어버린 간당간당한 연인이거나, 이중 하나일지 몰라도 뭔가 단단히 꼬여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얼마 있지 않아 사이렌 소리가 자호천 일대에 가득 울려 퍼졌다. 도로변과 자호천 입구에 경찰차가 에워싸고 있었다. 총격살인이라는 신고 때문인지 엄청난 수의 경찰이 주변을 덮었다. 깡마른 여자와 여자커플을, 일행처럼, 같은 피해자이고, 같은 목표물로 동일 선상에 올려놓으려는 경찰의 판단을 정정해주어야만 했다. 사실 깡마른 여자는 이런 일에 엮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먼저 앞섰고, 피해라고 생각할 데미지가 없었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곧 치유될 거라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들쑥날쑥한 정신세계를 컨트롤하기 바쁜 자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경찰관님, 전 다만 지나가는 행인과 다를 바 없어요.”“아니, 이분이 범인을 목격했어요.”여자커플은 물귀신 같은 목소리로 깡마른 여자를 끌어들였다. “범인을 보셨군요. 그러면 경찰서까지 동행해주셔야겠습니다.” 남자커플의 시체를 119대원이 엠블란스에 싣고 있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다가 경찰관의 뒤를 따랐다. 귀찮고 번거로운 사건에 꼼짝없이 엮였다는 생각에 짜증이 났다. 그렇지만 달아날 수 없다는 것도 깡마른 여자는 잘 알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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