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생노병사(生老病死)의 윤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모든 물질은 성주괴공(成住壞空)하고 모든 현상은 생주이멸(生住異滅)을 반복한다. 이러한 원리가 계속되므로 머무르지 않는 까닭에 무상(無常)이고 고정된 실체가 없다 하여 무아(無我)이며, 이것이 정함이 없는 법이라 하여 공(空)이라 이름 지어 부른다. 이른 바 우주의 법칙인데 붓다께서 말씀하였다 하여 불교다. ‘부처님오신날’이다. 붓다께서 이 세상에 오신 뜻은 중생이 이 도리를 깨달아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길을 안내하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어리석은 중생은 불상 앞에 복전을 놓고 늙지 않고 병들지 않기를 기도한다. 진리를 설파하신 붓다께서 어찌 진리를 외면하고 중생에게 허망한 복을 내리시랴. 마침 병이 찾아온 지라 의사의 처방대로 치료하고 바라본다. 관(觀)하니 뚜렷하다. 때로 고통이 찾아오고 마음에서 무기력증이 들고 일어나기도 한다. 그 또한 기도해서 없앨 적이 아니라 단지 바라보고 알아차릴 대상이다. 알아차리니 무상(無常)의 법대로 서서히 또는 순간적으로 사라진다. 육신의 고통이 다시 반복되고 그 흐름이 일정하지 않아도 그냥 바라보고 있으면 되리라. 나는 끝내 병(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니 그냥 데리고 함께 살아갈 일이다. 그것이 또한 진정으로 병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취하는 길이다. 붓다의 가르침대로!김연호자는 치욱이고 본관은 월성이며 1866년 병인에 태어났다. 성품이 쾌활하고 일을 꾸미는데 민첩함이 있었다. 천하가 크게 어지러운 때에 산남의진의 거사(擧事) 소식을 듣고 산간의 사냥꾼들을 부르고 모집하여 스스로 의진에 참여하였다. 후에 대장의 신임을 얻고 각 지방을 연결하여 의병을 모집하는 임무에 최선을 다하였다. 연호는 여러 고을에 출몰하면서 마음을 다하고 죽을힘을 다했지만 적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감옥에 갇힌 지 여러 해 동안 병을 앓다가 출옥하여 1915년 을묘 7월 8일에 죽었다.〈원문〉金演濩는 字致彧이요 月城人이라 丙寅生이요 性이 快活하고 有謀事之敏하다 及天下大亂에 聞山南之擧하고 自願從之하야 召募山間獵手而歸之하고 後에 得將官之信任하야 以地方連召募之任으로 出沒列邑하야 盡心死力이런이 被執於敵하야 繫獄多年이라가 以病으로 出하야 乙卯七月八日에 卒하다 <山南倡義誌 卷下55p>金演濩 義士 略歷(김연호 의사 약력)金演濩(김연호)는 字(자)는 致彧(치욱)이요 貫鄕(관향)은 月城(월성)이라 山南義陣(산남의진)에 從事(종사)로 활약하다가 피금되어 수년 간 옥고를 겪고 출옥하여 永逝(영서)하다 <山南義陣遺史471p>
김연호의사 공훈전자사료관 공훈록경상북도 일대에서 의병운동을 벌인 독립운동가로 1866년에 태어났다. 1904년 러일전쟁 발발 이후 일본은 한반도에 대한 군사기지 사용권을 획득하고 대한제국의 내정에도 간섭하였다. 러일전쟁 승리 이후에는 1905년 11월 을사조약 강제 체결로 대한제국의 외교권도 침탈했다. 이에 1906년 3월 영천(永川) 출신 정환직(鄭煥直)을 중심으로 이한구(李韓久)와 정순기(鄭純基)‧손영각(孫永珏) 등이 경상북도 지역에서 산남의진을 일으켰다. 산남의진은 영남지역을 대표하는 대규모 의진으로 을미의병 기간의 의병 전투를 주도했다. 김연호는 산남의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주요 전력인 포수의 모집을 담당했다. 그러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옥고를 겪다가 1915년 7월 8일에 순국하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