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여자(34)기억을 더욱 또렷하게 하는 장치로 일종의 뇌파에 특정 자극을 주는 전기선이 머리에 연결되었다. 혹시 졸음이 쏟아져도 상관없이, 모니터에 꿈속 장면이 어렴풋하게 그려지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런 자극에 대해 발생하는 뇌 전위를 관찰할 때는, 해당 자극에 따라 뇌 전위가 플러스로 움직이는지 마이너스로 움직이는지 전위차별로 구분해서 분석해준다고 덧붙여주었다. 아주 작은 단서도 사건에 도움이 되니, 즉시 기억나는 대로 이야기해달라는 형사는 무심하게 호두알을 손바닥에서 굴리고 있었다. 호두알은 자리다툼을 하듯 몸싸움을 했다. 간혹 호두알이 부딪힐 때마다 딸깍딸깍 소리는 고스란히 귓가에 채집되었다. 처음에는 집중이 안 된다고 짜증을 부렸지만 곧 익숙해진다며 호두알 굴리기는 멈추지 않았다. 마치 최면직전에, 시계추 흔들기 역할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면서 딸깍딸깍 거릴 때마다 멀리서 본 범인을 줌으로 당기기 시작했다. 두 눈을 감고 머릿속에 그려지는 범인의 칼이 먼저 보였다. 곧 도리질을 하며 범행도구는 총이라고 정정하며 기를 모으자 칼이 총으로 바뀌었다. 신기하게도 칼은 옅어졌고, 총은 뚜렷하게 범인의 손에서 자리를 잡았다. 형사가 요구하는 것은 범인의 생김새였기에 깡마른 여자는 상상만으로 까치발을 들었다. 좀 더 명확히 범인의 특징을 파악해서 전달해주고 싶었다. 딸깍딸깍. 줌으로 당겨진 범인은 뒷모습뿐, 애석하게도 특징을 찾을 수 없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나요? 그래도 달아나다가 한번쯤 뒤를 돌아보았을 겁니다.” 양미간을 찡그리던 깡마른 여자는 비명에 가까운 탄성을 질렀다. “맞아요! 뒤를 돌아봤어요. 거리는 좀 있었지만 나와 눈이 마주쳤어요.”“혹시 설명이 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범인과 마주하면 알아볼 수는 있겠죠?”의식은 분명하게 돌아오지 않았지만, 멀리서 본 범인과 한 번의 눈 마주침만으로 식별할 수 있는 안면인식이 전달된 것 같아서 깡마른 여자는 흔들림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군중 속에서도 어쩌면 찾을 수 있는, 오래 묵은 인연처럼 받아들여졌다. 딸깍딸깍 소리가 더욱 가까워졌고 형사가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눈을 떴고, 언제 들어왔는지 뇌파 연결선을 때내는 또 다른 형사가 보였다.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첨단장비를 따라잡기에는 우리가 배운 교육으로 어림없다는 한마디에, 뇌파장비를 챙기던 형사의 어깨가 왠지 우쭐해 보였다. “참고인으로 오셔서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마 다음번에는 선상에 오른 몇몇의 범인을 범인식별 절차인, 줄 세우기로 가려낼 예정입니다. 한쪽만 볼 수 있는 특수유리를 통해 그들과 마주했을 때 신분보장은 확실히 책임지겠습니다. 물론 단정된 범인이 체포되면 그런 번거로운 과정은 거치지 않겠지만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집에 돌아가셨다가 전화를 받으면, 아, 귀찮다고 생각하셔서 전화를 꺼 두진 마십시오. 모두가 사건으로 이어진다고 생각이 드는 저희들을 헤아려주시고 꼭 방문해주십시오. 그래도 다른 분들보다는 강한 내성을 지니고 계십니다.” 살아오면서 오늘이 긴 하루라며, 세 손가락에 꼽을 하루처럼 느껴졌다. 경찰차에 동승하여 와서 굳이 마을 입구에서 내렸다. 저녁놀이 전력질주를 하듯 붉고 우람하고 만발했다. 깡마른 여자는 다만 포옥 한숨을 쉬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애매하게 슬펐고 애매하게 정돈되지 않아 두루뭉술 마을 입구에 서있었다. 하늘이 노을을 떠받들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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