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잊혀져 가는 우리 영천의 역사학자 김성칠·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김성칠 《초당(草堂)》 영천으로 · 영천출신 사학자이자 국학자 김성칠(金聖七, 1913~1951)·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번역가, 해방된 나라의 젊은 역사학자 영천역사박물관은 영천과 관련된 문화유산 4만 점을 소장하고 있다. 그 가운데 영천 출신의 김성칠 · 백신애 · 하근찬 등과 관련한 책도 찾아내고 있다. 오랫동안 한 권의 책을 찾고 있었는데 2025년 5월 15일에 수집된 김성칠이 번역한 소설 《초당(草堂)》이다. 이 책은 강용흘(1898~1972)이 1931년 미국에서 출판한 《The Grass Roof》를 1945년에 김성칠이 《초당(草堂)》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한 것이다. 강용흘은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1921년에 캐나다로 건너가 잠시 달하우지 대학교(Dalhousie University)에서 수학했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보스턴 대학교에서 의학, 하버드 대학교에서 영미문학을 전공한 재미 문학가이다.이 책을 20년간 찾은 이유는 일제강점기 청년 지식인이자 역사학자 김성칠이 식민지 조선의 혹독한 현실 속에서는 펄 벅의 ‘대지’을 번역한 이후 해방이 되자 곧바로 강용흘의 ‘초당’ 소설을 통해 우리 민중이 지닌 끈질긴 생명력을 잃어버리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었던 소설이다.일본 제국주의가 조선과 아세아 대륙을 침략하던 시기, 조선 농민과 아시아 민중은 땅을 닮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식민지 광풍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대지’와 일어 번역본인 1942년에  시게마쓰 타카모토(重松髜修)의 《朝鮮農村物語》를 편집, 번역한 《조선농촌담(朝鮮農村譚)》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다. 해방 직후에 펴낸 《조선 역사》(1946) 등 여러 권의 역사서를 펴낸 사학자이다. 또한 고전 번역서인 《용비어천가》(전 2권, 1948)와 《열하일기》(전 5권, 1948~1950)를 대역한 국학자이기도 하다.영천역사박물관이 수집해 온 김성칠의 자료를 시기별로 정리하면 아래의 표와 같다. 일제강점기 재미작가 강용흘은 《초당(草堂)》은 한국의 자연 속에서 영위하는 한국인의 소박한 삶의 아름다운 회상을 통하여 사소하고 인간적인 삶이 사상이나 이념보다 더 중요함을 일깨우고 있다. 작가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이러한 우리 민족의 평범한 삶이 일본의 침략과 수탈 속에서 어떻게 황폐해져 갔는지, 그리고 3·1운동이 왜 일어나야만 하였는지, 그 당시의 사회와 역사를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그리고 식민지 조선의 혹독한 모습 투영하여 고난을 이겨내는 끈질긴 생명력 담아낸 민족 고난사를 김성칠은 1945년 8월 해방을 맞이하자마자 20일부터 ‘초당’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했다.김성칠은 고등보통학교 시절 비밀결사에 가담해 대규모 동맹 휴학을 주도하다가 검거됐다. 금융조합에 재직 중 1940년에 펄 벅의 ‘대지’ 완역해 냈다. 1942년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사학과에 입학해 늦깎이 역사학도로 변신했다.서울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김성칠은 피난지 부산에 머물다가 제사를 지내러 영천인 고향에서 사망했다. 만 38세의 젊은 나이였다. 《초당(草堂)》은 원작의 전반부로 후반부 번역은 1951년에 사망으로 인해 마무리되지 못한 미완성작으로 김성칠과 닮아있는 책이다.
즐겨찾기+ 최종편집: 2025-07-01 16:49:21 회원가입 전체기사보기 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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