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유명한 말은 민주화 등 역사적인 분기점을 잘 극복한 사실에 대한 반면교사의 말일 수도 있지만, 민족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은 문화유산에 대한 말이기도 하다. 문화유산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지역과 지역민의 정체성의 집합체이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생명체일 수도 있다. 영천은 지금 문화적 관점에서 볼 때 새로운 하나의 분기점이다. 국가유산청이 청제비를 오는 26일 국보로 최종 지정 고시한다. 약 1천5백 년 전인 신라 법흥왕 때 조성돼 지금도 남부동 일대에 농업 용수를 공급하는 청못이라는 저수지가 있다. 그 못둑 아래에는 이 청제를 쌓은 기록이 담긴 비석 2기가 비각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비석 양면에 서기 536년 청제의 준공 기록과 798년 수리 기록을 새긴 신라 청제비와, 1688년 상황이 담긴 조선시대 청제 중립비다. 비석에는 청제 축조 배경과 규모, 동원 인원, 수리 건수 등이 자세하게 기록돼 신라의 토목 기술과 재해 대응 체계를 명확히 살펴볼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 비슷한 시기에 축조된 저수지 중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유일한 기록이다.이 청제비가 1969년 보물 지정 이후 56년 만에 국보로 지정되는 것이다. 국가유산청은 신라의 자연재해 대응책과 제방 관리에 대한 실증적인 기록과 서로 다른 시기의 비문이 새겨진 사례는 희귀하다며 당시 정치.행정 체계 및 사회.경제 구조도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했다. 이번 국보 지정에는 영천 시민들로 구성된 청제비 국보승격 및 청제 사적지정추진위원회가 큰 역할을 했다. 청제와 청제비가 온전한 실물이 있고 명확한 기록도 있어 국보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보고 수차례의 현장 답사와 학술대회 등을 열어 그 가치를 입증한 덕이다. 아울러 이 단체는 청제를 향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일도 추진하고 있다.이번 청제비의 국보 지정은 지역 문화유산의 가치 상승의 계기가 될 것이다. 시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관광자원으로 활용 가능성의 새로운 전기도 된다. 이 청제비는 새로 건립되는 영천역사박물관과 영천9경이 어울려 지역에 새로운 관광 상품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완산동에 있는 골벌국 왕릉들에 대한 발굴조사도 조만간에 이뤄져 영천이 대한민국 속의 문화수도로 거듭 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이런 비전이 빛을 발하려면 영천시가 역사와 문화, 인문 정체성을 지닌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고대 신라의 상황을 생생히 전해주는 청제비. 늦었지만 그 역사적 중요성에 걸맞는 평가가 나왔다. 청제비 국보 지정이 우리 조상들의 혼이 살아 숨쉬는 영천의 자랑스런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전기가 되길 바란다. 또 국보 지정을 기회로 지역만의 국가유산을 넘어 한국전통의 토목기술과 재해대응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장으로 발전시켰으면 한다. 영천의 역사는 우리의 자긍심이다.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행정기관과 지역사회의 동참 속에 새로운 사업 확대 등 전 시민적인 관심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