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여자(36)수피아가 외출했다. 아니 정확히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서에 불려갔다. 오십 평 정도의 낡은 목조건물에 뎅그라니 혼자 남겨진다는 것은, 고독 속에 잠수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곧 무료했고, 따분했고 급기야 수전증 걸린 것처럼 손마디가 저려오면서 떨리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경찰관과 동행하는 자리에 껌딱지처럼 따라 붙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차라리 거두절미하고 따라나서는 길을 택한 것이 옳았을 것도 같았다. 집안을 어슬렁대었다. 마치 발바닥으로 바닥을 청소하기라도 하듯 질질 끌면서 몇 바퀴 돌았다. 그러다 보니 수피아의 부재중 때문만이 아니라고 깨달았다. 매번 답답함을 토로하며 산책을 나갔고, 해가 중천에 걸리거나 늬엇늬엇 넘어갈 무렵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몇 번 있었다. 문득 걱정하는 수준에서 지나갔지만 지금은 달랐다. 남자 커플이 수피아의 눈앞에서 총에 맞아 쓰러졌고, 선혈범벅이 된 채로 여자커플의 외마디 비명은 오래도록 쟁쟁거렸다는 것이다. 그런 광경을 목격하고 그런 기억을 소환해서 생생히 진술해야하는 그녀의 마음은 얼마나 묵직하고 무거울까. 헤아릴수록 마음이 와 닿아 더욱 아려왔다. 내가 수피아를 담아두고 있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놀라웠다. 쉽게 지나가도 되는 인연이라고 생각했는데. 거실로 연결된 지하실 출입구를 열었다. 몇 발짝을 옮기다가 문득 지나온 지하 계단 위를 쳐다봤다. 수피아가 주워온 머리뼈가 탁자위에서 반짝 빛을 발했다. 오후 햇살 한 점이 창살을 뚫고 거기까지 관통하고 있었다. 자신의 옛일을 들려주기라도 하듯 머리뼈는 꽈리를 문 것처럼 한쪽이 부풀러 올랐다. 새어 들어오는 빛이 더욱 굵어졌기 때문이었다. 머리뼈의 방향을 바꾸어놓으려다가 그대로 지하 계단을 밟아서 지하실 바닥에 닿았다. 새삼스럽게 투박한 느낌이 전달되었다. 이미 비둘기 울음소리로 가득했고 어둠은 다투어 지하실을 채우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백열전구의 스위치를 켰다. 밝음은 주눅 들지 않고 착실히 주변의 윤곽을 보여주고 있었다. 왠지 어설픈 돌탑이 먼저 눈에 띄었다. 지나칠 때마다 작은 돌을 올려주었다는 수피아의 말을 기억하며 가급적 평평한 돌을 찾기 위해 발로 뒤적뒤적 바닥을 긁었다. 모래와 진흙과 먼지가 뒤섞인 바닥에서 노다지를 찾는 심정으로 간절하게 헤집었다. 어디쯤일까. 신발 끝에 모습을 드러낸 작은 돌은 모나고 형편없었다. 결코 실망하지 않고 그 돌을 정성껏 돌탑의 구성원이 되게 올려놓았다. 스스로 감탄을 했고 자기장이 발산한다는 구역을 지나 비둘기들의 둥지로 접어들었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여기에서 멈출 수 없었다. 내 이전에 벌써부터 자리를 잡은, 비둘기 조상들의, 윗대가 굳건하게 터를 잡은 통로에서 어떠한 푸념도 짜증도 용납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들만의 세상을 이해해주는 것이,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파괴범의 최소한 양심일 것 같았다. 통로 벽에 바짝 붙어 출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갑작스럽게 침범한 한사람의 가난한 영혼을 이해해주기라도 하듯, 울음으로 나누는 소통이 잦아지고 있었다. 그만큼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된 날갯짓과 울음이 등 뒤에서 작아졌다고 인식되었을 땐, 밖으로 빠져나오는 출입문 앞에 서 있었다. 분명한 노을이 자호천을 휘감고 있었다. 이다지도 절실한지 이다지도 숙연해지는지 그 실상을 가늠할 수 없었다. 살아온 세월 따라 보는 풍경이 달라지고, 마음의 무게가 달라진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 같았다. 물끄러미 담아두는 빈공간이 하나 더 생겼다. 나이를 먹을수록 여백은 곳곳에 생겨나고 무엇인가 채워놓을 꺼리를 찾는 것이 나잇살이라고 결론지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