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첫눈이 내렸다.첫 경험처럼 마음의 현을 건드리며 살포시 내렸다. 이른 아침에 마당에 나가자 앞집 지붕에도 침수정의 지붕에도 첫눈의 흔적이 남아 있다. 붉고 노란 나뭇잎들은 바람에 이리저리 날려 다닌다. 해가 조금씩 올라오면서 집 안 통유리로 제일 먼저 침수정이 뚜렷하게 나타난다.‘안녕하세요? 할아버지!’마음속으로 두분 할아버지께 인사를 한다. 남편의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 두 분이 힘을 모아 지으신 정자이다. 베개 벨 침()枕)자에 이 닦을 수(漱)자라 했다.‘수’자는 잘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어려운 글자인데 두 글자는 전원 생활을 일컫는 말로 옛사람의 시문집에 나온 말이란다. 돌로 베개를 베고 개울물로 이를 닦는다는 뜻이라고 했다.그렇게 자연을 벗 삼는 시골 생활을 물질과 먼 청빈사상과 관계하여 표현한 것 같다.그렇게 옛 조상들이 생각한 자연과 지금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연은 여러 모로 다른 것 같다. 모기나 파리 등 해로운 벌레가 많고 잡초는 키를 넘을 정도인데다 쉽게 뽑히지도 않고 종내는 길의 흔적조차 없애버린다.자연은 생물 중에서도 식물에 더 자리를 주나 보다. 날것 그대로의 자연에 사는 동물들은 뱀이나 승냥이 정도나 되어야 살아남는 것 같다. 문명에 길든 사람에게 날것의 자연이 힘든 것은 당연해 보인다. 시골 간다니까 풀 뽑느라고 힘들어 어찌 사냐고 지인들의 걱정이 태산 같았다. 시골에 살더라도 문명인으로서 머리를 쓰며 살면 괜찮지 않을까? 새집의 앞뒤로 앞에는 잔디, 뒤에는 돌 자같을 깔았다. 그 자갈과 잔디 틈을 뚫고서도 잡초가 자라났다. 내년이 되어서도 예쁜 잔디밭을 유지하고 살 수 있을까? 집안 통유리 안, 흔들의자에 앉아 마지막 단풍에도 의연한 침수정을 바라보며 커피 한잔을 마신다. 지난번 서울 올라간 김에 미뤄웠던 바리스타 2급 자격 실기 시험을 봤고 어제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이곳 영천에 이사 오기 전 두달에 걸쳐 강의와 실습 필기 시험을 끝낸 터다. 무엇에 도전한다는 것은 어렵지만 언제나 가슴 설레게 한다. 누구의 어머니도 누구의 부인도 아닌 내 이름으로 내 나이를 내세우고서(시험을 칠 때 주민등록번호를 밝혀야 하기 때문에 나이를 속이기 어렵다) 실습을 받으러 다녔다. 20대 30대가 절반, 나이 많은 축도 50대 정도였다. ‘내 나이가 뭐 어때서?’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렇게 양손을 쓰는 바리스타란 직업은 나이를 뛰어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였다.커피를 내릴 때마다, 잔에다 부을 때마다 왜 그렇게 손이 떨리는지 몰랐다. 눈대중으로 잘할 것 같았지만 커피를 쏟기도 했고 다른 데다 붓기도 했다. 똑같아야 할 커피 두 잔의 양이 서로 들쑥날쑥 다르기가 일쑤였다.그러니 선생님한테 핀잔도 들을 수밖에. 하지만 이제 합격했는걸. 이곳으로 내려올 때 에스프레소를 뽑을 수 있는 커피 기계를 하나 사 가지고 내려왔다, 가끔 직접 만든 커피로 내게 선물을 한다.이곳에 살면서 카페를 낼 수 있을까? 가능성을 열어 둔다는 것 또한 도전이다. 바리스타 수업 때 처음 시작한 인원이 14명이었다.수료와 시험까지의 기간 동안 세 명이 사라졌다.시골에서 산다는 것. 여기서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하는 귀농이 아닌 귀촌이라도, 시골에서 살기를 선택했다는 것은 바리스타 시험 못지않게 중요한 도전으로 생각된다. 농촌은농부가 농사를 짓는 일터가 된다. 그 농부가 자녀교육 등을 이유로 도시에 사는 경우가 많아졌다. 또한 농촌은 도시에서수입을 얻는 사람들이 도시 대신 살기를 선택하는 곳이기도하다. 나처럼 즐겁게 귀촌하려는 사람들이 도전에 성공할 수있도록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나 지원도 필요할 것같다. 굿럭, 바리스타! (2017년 11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