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여자(38)수피아는 약간 피곤한 듯 무게중심을 내 쪽으로 기울였고, 바지랑대처럼 당연하게 어깨로 그녀를 버텨주었다. 노을은 어느 시점에서 꿀꺽 모습을 감추며 서로의 보금자리를 찾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경찰서에서 일렬로 줄선 용의자를 쉽게 식별이 되더냐며, 물으려다 마른 침을 삼키고 말았다. 어련히 알아서 대답해주겠지만, 아무 말도하기 싫을 때가 지금일지 모를 일이었다. 수피아를 부축하며 일어서서 어둠이 깔리는 서산마루에 왠지 아쉬워 눈길을 한 번 더 던져주었다. 또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부쩍 느껴지는 세월이, 나이 탓만은 아닌 것 같았다. 단지 뭐랄까. 이런 일상에 대한 불안감과 아쉬움이 이별을 예고하는 수순 같다고 받아들였다. 수피아는 수피아 대로 낡은 라디오에서 간간히 흘러나오는 취향저격의 음악에 귀를 맞출 것이고, 멜론 사이트를 권하는 나를 별개의 사람처럼 거리감을 두기 일쑤였다. 하긴 잡음이 섞인 채로 어쩌다 흘러나오는 음악을 아끼면서 듣는 그녀의 표정은, 결코 구닥다리 라디오를 고집하는 젊은 복고풍으로 정의를 내리긴 싫었다. 보이지 않는 뾰족한 그녀의 정신세계가 여전히 자리 잡기 위해 치열하게 전력질주를 하고 있다고, 나는 적어도 접수하기에 이르렀다. 거기다가 사람 머리뼈를 주워와 한쪽에 장식한다든지, 그리고 대화하고 눈을 뜨지 않는 땅속의 벌레처럼 다가가 그 이전의 시간을 부르는 의식과 고요하고 한없이 맑은 합일점을 향한 주문은 말문을 맺게 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문자와 흡사 예언가 빵상 아줌마처럼 우주신과 소통하는 것은 아닌지 호기심이 발동한 적도 있었다. 가장 소름이 돋을 때는 샤워를 마친 후에 행동이었다. 몇 번 그런 장면을 목격한 내가 혼자 놀라 욕실 밖에서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사실 수피아의 독특한 세계를 이해하는 쪽에 서보려고 노력중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집에 들어온 수피아는, 허물을 벗듯 거추장스러운 옷을 입구에 벗어두고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전개될까 이미 알고 있는 나는, 옷을 일일이 옷걸이에 걸거나 세탁기에 넣어주며 욕실 유리에 비춰지는 실루엣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녀가 부르기 전에 그 의식의 동참자 내지는 추종자 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싶었다. 집밖을 나갔다 들어왔다는 것만으로 죄악시되어 사악한 마음을 떨쳐내고 싶다는 그 마음이 첫 번째였다. 이 집을 점령하고 있는 혼령들에게 흔들림 없는 믿음을 확인해주고 싶은 마음이 두 번째였다. 언제든 이집에서 그리웠던 순간을 기억하며 완전히 늙어버릴 때까지 한 치의 의심 도 두지 않고 살아야 된다는 맹세가 세 번째였다. 수피아의 실루엣이 욕실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나도 깡그리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 단아하고 엄숙한 한 여자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세상에서 지금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으로 물집이 잡혔다 터지곤 하다가 굳은살이 생긴 것처럼 되풀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샤워기를 틀었다. 쏟아지는 물줄기 아래 무릎을 꿇고 수피아의 주문에 귀를 쫑긋 세웠다. 한번은 푸른 멀미를 싣고 먼 바다를 그리워하는 항해를 멈춘 폐선으로 끽끽거렸다. 한번은 뱃속 근심으로 출렁거리며 변기를 찾는 조급함으로 아우성쳤다. 한번은 세상을 향한 어퍼컷으로 요동쳤고, 한번은 제 속을 비워가는 당산나무처럼 나뭇잎을 떨구었다. 수피아는 내손을 잡았고 그녀의 동글동글한 젖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나이차이가 마흔 살이 되던지 아무 문제가 될 수 없었다. 사십년의 공간을 위해 수평선에서 달려온 파도는 해안을 다녀갔을 게고, 인연을 맺기 위한 헹가래는 계속 되었을 것이다. 여전히 남루한 내 몸을 맡겼다. 점점 상승되는 그녀의 열기에 안팎으로 허물어지는 내 음표들이 욕실바닥에서 또르르 굴러다니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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