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여자(39)수피아가 주관하는 의식은 계속 되었다. 다녀온 외출에서 잡귀를 쫒는 건지, 미래를 향한 도약을 확인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무조건 따라야한다는 복종의 자세는 여전하였다. 발가벗을 채로 무릎을 꿇고 있는 그녀 앞에, 역시 발가벗은 채로 무릎을 꿇고 다음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매번 순서는 즉흥적으로 바뀌어서 저번 순서에 입각한 행동은 금물이었다. 알몸뚱이 위로 틀어놓은 샤워기 물줄기가 끼얹어져, 수련하는 폭포수 아래라고 잠깐 스쳐 생각했지만 곧 떨쳐버렸다. 집중하는 것이 온전히 그녀를 떠받드는 도리라고 받아들였다. 무슨 짓을 하던, 내 몸뚱어리로 공기놀이를 하던지 이미 상관없이 가스라이팅을 당해, 독립성과 창의성을 교묘히 무너뜨리는 장본인이 수피아라는 사실이었다. 주종의 관계에서 심각한 심리적 영향을 미쳤을 때 자신의 판단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혼란스럽고 불안한 일상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히 그녀였다. 어떤 결정도 신뢰할 수 없어서 자문을 구하기 일쑤였고 그녀의 손길로 맥을 짚어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다만 자신이 가스라이팅 피해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즐기고 있다는 것이 구별의 차이였다. 그리고 철저한 복종의 보상으로 수피아는 자신을 마음껏 제공해주었다. 어떤 체위든지, 어떤 시간이던지 상관없이 연중무휴로 개방해주었다. 그 달콤한 섹스를 위해 나는 더욱 더 바짝 엎드릴 것이고, 개처럼 짖을 것이다. 서로의 생각과 행동이 맞지 않는다고 결코 자신의 생각과 행동으로 설득하지마라. 그것 또한 가스라이팅이고 억지인 것이다. 지금 충분히 행복하고 보람된 나날로 경영하고 있는 시간은, 눈 시린 유리창마다 계절이 찾아오는 반짝임의 자호천이 펼쳐져 있는 까닭이었다. 수피아가 욕조에 물을 받았다. 거품을 풀며 자신의 몸으로 물높이를 조절했다. 무릎을 꿇고 기다리면서 비누거품 향기와 그녀에게 다녀가는 물소리와 욕조 벽을 때리는 무릎과 무릎사이를 과장된 상상만으로 전위를 불태웠다. 출격 명령을 기다리는 내 몸은 소용돌이쳤고 ‘돌격 앞으로’는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더 이상 무릎을 꿇고 있을 수 없을 때 뱃사람을 유혹하는 로렐라이 언덕의 요정처럼 그녀가 한마디 던졌다. “아찌, 욕조로 납시옵소서.” 좀 더 크고 단단하게 보이도록 엉덩이를 앞으로 내밀면서 욕조 안에 몸을 담그며 그녀의 시선과 마주쳤다. 의식의 주관자답게 너그러움과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발을 뻗어 종아리를 넘어 허벅지를 타고 남자에 도착했을 때도 온순하게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까닥까닥 마구 덮쳐도 된다는 출발신호와 함께 발정 난 한 마리 맹수는 요란한 몸짓으로 거품방울을 반으로 갈라놓으며 으르렁 덤벼들었다. 밖은 폭염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백년 지난 가옥은 겸손하게 낮은 위치로 터를 내려놓고, 더위와 추위를 스스로 이겨내고 있었다. 자연 바람이 더운 공기를 피해 찬 공기로 여름을, 더운 공기는 겨울나기에 적합하도록 배분되고 있었다. 어쩌면 피돌기처럼 주변을 배회하는 자호천 물줄기가 한랭과 온냉을 점차 커지면서 뚜렷하게 만들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계절의 변화는 자기력을 상승시켜 유리한 쪽으로 기온을 만들고 있었다. 수피아의 몸과 하나가 되었을 때 지하실로 이어지는 자기장이 먼 곳의 물소리처럼 만져지고 있었다. 쌓아놓은 돌탑사이로 몇 개의 검은 돌에서 빛나는 세월 한 무더기가 따라와, 하찮다고 생각한 세상을 별처럼 마음속에 새겨놓곤 하였다. 그러면 이렇게 떨려도 불평 없이 맞이해줄 넓은 가슴이 새삼 뜨거워지고도 남을 일이었다. -계속
즐겨찾기+ 최종편집: 2025-08-17 23:04:55 회원가입 전체기사보기 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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