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부처님께서 죽림정사에 계실 때 어느 날 외도인 선니(仙尼)가 부처님께 문안드리고 여쭈었습니다.“푸라나, 고사라, 산자야, 파투다, 아지타, 니건타 등과 사문, 바라문이 모여 서로 자기들의 주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죽어서 다음 생에 어디에 태어날지를 하나도 예언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사문 고타마께서는 사람이 죽으면 다음 생에 어디에 가서 태어난다고 예언을 하지마는 그것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고타마께서는 어떻게 그런 법을 얻으셨습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너는 의심하지 말라. 그 사람은 어리석음이 있기 때문에 의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선니야, 이 세상에는 세 가지 스승이 있다.어떤 사람은 금생(今生)만을 보고 이것이 ‘나’라고 생각하여 자기가 아는 대로 말하지만 목숨을 마친 다음의 일은 알지 못한다.어떤 사람은 금생에서 이것이 ‘나’라고 생각하고, 목숨을 마친 뒤에도 또한 이것이 ‘나’라고 생각하여 제가 아는 대로 말한다.어떤 스승은 금생에서도 이것이 진실로 ‘나’라고 보지 않고 목숨을 마친 뒤에도 이것이 ‘나’라고 보지 않는다.금생만을 보고 이것이 ‘나’라고 말하는 것은 단견(斷見)이고, 금생에서나 다음 생에서나 이것이 ‘나’ 라고 말하는 것은 상견(常見)이다. 그러나 금생에서나 다음 생에서나 이것이 진실로 ‘나’라고 보지 않는 것은 깨달은 부처의 말이다. 그래서 금생에서 애욕을 끊고 욕심을 떠나 모든 번뇌를 벗어나 열반을 얻느니라.”“세존이시여, 말씀을 들으니 더욱 의심이 납니다.”“마땅히 의심을 더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매우 깊은 이치이기 때문에 보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려워 깊이 관찰해야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니라. 이것은 슬기로운 사람이라야 알 수 있고 범부 중생들은 분별해 알기가 어렵나니 중생들은 윤회히는 긴 세월 동안에 보는 것, 인식하는 것, 추구하는 것, 희망하는 것이 나와 달랐기 때문이다.”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이 ‘나’라고 집착하는 오온(五蘊)에 대하여 낱날이 공(空)함을 설명하시고 선니에게 말씀하셨습니다.“나의 제자들도 때로 내 말을 듣고도 그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하여 ‘나’가 있다는 아만심(我慢心)을 끊임없이 일으킨다. 그렇듯 아만심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이 육신을 버리고서도 다른 몸을 받게 된다. 그래서 나의 이러한 제자들은 목숨을 마친 뒤에는 이러이러한 곳에 태어나리라고 말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아만심이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나의 제자로서 내 가르침을 듣고 그 뜻을 바르게 이해하여 아만심을 일으키지 않으면 목숨이 다한 뒤에 다시는 계속하여 윤회하지 않는다. 그들은 윤회의 내생을 예언할 만한 인연이 없기 때문이다.만일 내가 그들에게 예언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들은 애욕과 모든 번뇌를 끊었기 때문에 장차 해탈하여 고통을 완전히 벗어나리라는 것 뿐이다.”어리석은 사람들은 들은 것이 없어 나를 ‘나’라고만 보기 때문에 ‘나’에 집착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필경에는 ‘나’도 없고 ‘내 것’도 없나니, 나를 비우고 내 것이라는 생각을 비워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