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여자(40)마냥 누릴 수 있는 평온이 아니라는 가정 하에, 문득 흔들거나 낚아채는 불길한 낌새를 차라리 예견하며 기다리게 되는 수순을 밟게 되나보다. 수피아와 사이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방해하진 않았지만 누구도 허락하지 않았다. 다만 이쯤에서 한번쯤 불행해질 것이고, 이쯤에서 행복해질 것이란 걱정은 수시로 멱살잡이를 해왔다. 살과 살이 맞대는 꿈틀대는 그 시간에도 순간 찾아드는 진통을 느껴야했다. 오래 앓는 기침처럼 혼자만 익숙해졌을 뿐 기침소리는 주위를 곤혹스럽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땅속으로 서서히 잦아지고 있는 백년 가옥에 대한 굽은 등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자호천을 매개로 따글따글 돌 구르는 하천이며, 주변에 터를 잡은 식물이며 동물의 긴박한 생존게임이 왜 이리도 아득하게 불타오르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정착이 보장되었다면 낯선 나라에서 자호천 나루터로 뻗은 지하실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일인(日人)들은 막대기만 꽂아도 자신의 영토가 되는 약속의 땅 한반도로 우루루 몰려와 어느 곳에서든지 ‘빠가야로’로 중무장 했을 것이다. 원자폭탄 “리틀 보이” 투하로 무조건 항복한 일인들의 서글픈 퇴각 속에 이 집의 주인도 지하실 통로를 따라 자호천 나루터에 몰려갈 수밖에 없었다. 산천을 두고 떠나온 발걸음은 산천을 두고 찾아가는 발걸음으로 바뀌어 남루한 울음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호천의 물줄기는 무모하고 무용한 꿈들을 하류로 실어 보내면서, 쉽게 건너다닐 수 없게 강폭을 넓혀온 자기방어가 푸른 물결을 만들었다. 징검다리로 건널 수 없는 저 도도함이 뭇 생명체에게 갈증을 해소하는 피돌기가 되었을 것이다. 수피아를 침대에 눕혀 재웠다. 바닥에서 잠이 드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였지만 모기, 파리, 바퀴벌레, 벼룩에게 마지노선을 그어주고 싶었다. 침대는 단연코 인간의 영역이기에 날개 따위로 침범할 수없는 신성불가침의 절대적인 권리를 주장하고 싶었다. 내 뜻을 헤아렸는지 이미 침몰하고 있는 바닥에서만 더 몰려다니고 있었다. 침대가 주는 아늑함이 자위권을 발동하게 하여 더욱 전투력태세로 돌입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땀 냄새도 무기력함도, 푸른 주먹을 불끈 쥐게 하는 계기의 밑바탕이 되어 해충들과 독하게 눈 맞을 일없는 영역이 되었다고 믿었다. 언제든지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를 가진 해충들과의 약속은 그렇게 지켜졌다. 가급적 뒤꿈치를 들거나 피해 다니면서 순조로운 평화는 계속 되었다. 수도꼭지를 틀어 손을 씻었다. 정상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계곡을 따라 내려와서 곳곳으로 흩어져도 어차피 자호천은 큰 줄기로 둥글둥글 살을 보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저 먼 낙동강이고 동해바다라면 모두들 망설이지 않고 핏줄로 이어졌다. 물줄기는 폭염 속에서도 찬 성질, 그대로였다. 손을 씻으며 수피아를 쳐다보았고, 손을 닦으며 수피아의 깊은 숨소리를 들었다. 창밖은 뜨거운 열기가 엎질러지고 있었다. 지하실계단을 밟으며 뚫린 공간을 통해 들어온 햇살 무더기를 세었다. 시간 따라 곧 없어질 풍경이지만 왠지 그대로 보내주긴 아까웠다. “아찌, 혼자 집밖으로 다녀와도 되겠죠?”침대에서 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따라와 내 보폭을 맞추고 있었다. “혼자?”“넵, 독고다이로.”선뜻 허락해줄 마음은 없었지만 이미 수피아의 결정에는 한풀 꺾어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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