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여자(41)따닥따닥 여름 꽃이 지천에 쌓였다. 결실을 준비하는 그 과정은 순탄하게 보여도 씨앗을 품은 열매는 비장했고, 가을을 맞이할 나뭇가지들은 매듭처럼 단단해지고 있었다. 이미 자호천은 몸집을 키워, 강변의 웃자란 잡풀들마저 키 재기에 여념이 없었다. 걸음을 옮기며 깡마른 여자는 습관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짧은 장마라고 아쉬워하던 날씨는 다른 지방에서 곧 이백년 만에 찾아오는 폭우를 동반하고 말았다. 곳곳에 물난리에 예기치 않는 인명피해까지 겹쳐 신속한 대응을 촉구하는 재난지역이 속출했다. 며칠 몇 밤을 줄기차게 퍼붓던 빗줄기는 잦아졌고 하늘은 다시 거짓말처럼 맑았다. 심심찮게 내리던 빗줄기가 그치자 주변 풍경은 광을 낸 듯 초롱초롱해졌다. 눈부신 하늘을 보며 곧 돌아올 것처럼 깡마른 여자의 발걸음은 순하고 부드러웠다. 항시 혼자만의 뚜벅이 여행을 꿈꾸어 왔다는 증거로 들뜬 표정이 말해주고 있었다. 모래사장의 둔덕은 휩쓸려갔거나 사방팔방 골고루 흩어져 강변을 반짝이게 하는 한몫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강변을 타고 넘치던 물살이 슬기롭게 중심이동을 하였다. 강 건너편에서 혼자된 아기고라니가 위험을 감지했는지 쇠 긁는 소리로 울었다. 그녀가 더 덜컥 놀랐지만 침착하고 싶었다. 강폭으로 봐서 전혀 위험요소로 부각되지 않았지만 아기고라니는 시종일관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어쩌면 오소소 떨던 두려움에서, 도움을 청할 계기를 강 건너 깡마른 여자를 통해 얻고 싶었을 것이다. 자호천 일대를 뒤덮고 있는 곤충울음을 잠재울, 저 독한 아기고라니의 반응은 깡마른 여자가 처음에 잡은 방향마저 먹어치우고 있었다. 어찌나 소름 돋는 울음소리인지 귀를 막을 정도였다. 어느새 다가온 고라니 어미가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면 그녀가 먼저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하였다. 일제시대 잔재가 남은 나루터에서 잠시 멈췄다. 나루터 터라고 알지 못했다면 형편없는 나무말뚝이나 판자조각이 걸쳐져 있다는 흉물정도로 치부하겠지만 익히 그녀는 알고 있었다.낯선 땅에서 자신의 뿌리를 심기위한 푸른 꿈은, 집을 짓고 가족을 늘린 이유와 맞물려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다. 사계절을 빼곡하게 흐르는 강줄기 목록에 끼어 맞춘 나루터가 몫을 했다면 필시 나룻배는 말뚝에 매여 대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정착과 귀환사이에서 정세를 읽고 있던, 깨어있는 그들의 선택이 옳았는지 알 수 없지만 야반도주로 나룻배에 몸을 실었다. 말뚝에 매여 정비가 소홀했던 배 바닥은 물이 차오르고, 할복할지언정 돌아설 수 없는 사무라이 정신은 물살로 가라앉았다. 그것이 가끔 발견되는 사람 머리뼈로 들통 나는 증거인 셈이었다.
깡마른 여자가 살고 있는 목조가옥이 퍼즐로 종합해보면 자호천과 모래둔덕과 부챗살 같은 숲과 나루터와 대피통로인 지하실로 반드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고치 속 애벌레 시절부터 성충이 된 지금까지 여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고집하는 이유는 차라리 편안함이라 읽었다. 얽히고설킨 악연으로 읽기도 하고 목조 가옥의 지킴이라 읽기도 했다. 그렇지만 집을 나설 때부터 다른 날과 다른 비장한 결심으로 무장하고 있는 자신이 느껴졌다. 아무튼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볼 것이다. 카드도 돈도 넉넉히 준비했다. 어떤 통제도 주지 않는 시간은, 마음먹은 대로 쓰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