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여자(42) 영천터미널에서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 종착지버스를 탔다. 3시간 30분이 소요되는 만만찮은 거리였다. 허지만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누군가 터미널에 마중 나와 있을 거라는 얼토당토 않는 생각이 내심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그 넓은 낯선 천지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보다 더 희박한 확률을 예견해도 무방할 것이다. 더구나 고립된 삶을 즐겼던 인맥의 목록을 들추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되지만 깡마른 여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쩌면 1인용 텐트에 급습하여 만난 그 남자가,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에 예기치 못한 일로 발이 묶여 있다든지 세상사는 모를 일이었다.  우로지 산책로에서, 자호천 주변에서 그렇게 눈이 마주쳤지만 잊혀져간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화석 같은 인연이 다가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장거리 여행 버스는 처음이었다. 가급적 여유 있는 표정을 앞세워 불안함을 들키지 않으려고 나름 애쓰고 있었다. 군것질을 잘하지 않지만 육포에, 새우깡에, 캔 콜라를 검정 봉지에 담아주는 대로 23번 좌석을 찾았다. 창가 쪽이길 소망했다. 그래야만 변화무쌍한 풍경으로 지루할 겨를 없이 3시간 30분을 버틸 것 같았다.시간이 지날수록, 아직 밤풍경으로 접어들지 않았지만 내심 머리채를 낚아채는 통렬한 아픔이 군데군데 느껴지고 있었다. 휴게소에 정차했을 때 몇 군데 더 들른다는 전제하에 화장실에 다녀오고 싶었지만 일어서지 않았다. 귀찮았고 항상 다른 부류로 살아온 이유 있는 차별성이라 스스로 반박했다. 그렇지만 어떤 반박도 필요 없는 원초적 본능에 따른 충동 해결은 필수였다. 그걸 간과한 대가는 처절했고 혹독했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오금이 저려왔다. 퍼뜩, 뒷좌석을 쳐다봤다. 다행히 앞좌석만 승객들로 메워져 있었다. 깡마른 여자는 캔 콜라를 들고 너구리처럼 걸어서 뒷좌석을 차지했다. 소변을 담을 용기가 필요했고 캔 콜라가 당첨된 것이었다. 문제는 캔을 비우고 소변을 채워 넣는 현란한 기술이 필요했다. 다만 머리를 굴렸다. 캔의 내용물을 바닥에 버릴 수 없다면 마셔서 없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봉착하게 되었다. 꽉 찬 요의에 다다르기 전에 발사를 하게 되고, 얼마간의 간격으로 여유가 생긴다면 틀림없이 참을 수 있는 시간이 더 주어질 것이다.승객들은 코까지 골며 잠이 든 몇과 잠이 들지 않았지만 스마트폰 검색으로 분주한 몇이 전부였다. 기사는 부릅뜬 눈으로 졸지 않으려고 앞만 보고 운전하고 있었다. 이를 악문 스피드가 필요했다. 은밀히 바지를 내리고 팬티도 내렸다. 콜라를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탄산음료라 술술 넘어가진 않았다. 모든 것은 끊어짐 없는 한 동작 안에서 성공을 확신해야만했다. 곧 빈 캔을 정확한 지점에 맞춘 뒤 소리를 죽여 천천히 오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차오르는 오줌을 보며 이토록 불안하면서 당황하게 한 적이 있었던가. 뱃속을 채운 음료가 대기 중인 오줌과 만나 폭포수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품은 적이 있었던가. 깡마른 여자는 애써 수도꼭지를 잠갔다. 똑똑 떨어지는 방울마저 멈추고 싶었다. 어쨌든 안정권에 접어들자 여유가 생겨 뒷좌석 주변을 둘러보았다. 캔에서 찰랑거리는 오줌을 해결하고 싶었다. 비문화인인 것처럼 이대로 방치해둔다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았다. 버스천장 환기구가 눈에 띄었다. 일어서서 힘껏 환기구를 밀었다. 한쪽으로 경사지게 열리고, 깡마른 여자는 차멀미 속을 달랠 표정으로 얼굴을 갖다 대면서 캔을 밖으로 던져버렸다. 오줌이 비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서울은 그렇게 다가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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