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표충사는 오랜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의 천년고찰로 신라 무열왕 원년(654)에 삼국통일을 기원하고자 원효대사가 터를 잡아 죽림사를 창건하였고, 신라 흥덕왕 때 인도 스님이신 황면(黃面)이 재건하여 영정사(靈井寺)로 개칭한 절이었다. 이 절은 양산 통도사의 말사(末寺)로 임진왜란 때 승병으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명대사의 충훈(忠勳)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표충사당이 있는 절이다. 표충사라는 이름은 사명대사를 제향하는 사당을 당시 서원의 격(格)으로 표충서원이라 편액하고 일반적으로 표충사(表忠寺)라 불렀다. 그러므로 경내에는 제향을 올리는 서원과 사당이 자리하여 유교와 불교가 공존하는 특이한 사찰이기도 하다. 원래의 표충사는 밀양시 영축산에 있던 백하암(白霞庵) 자리에 있었으며 사명대사의 제사를 모시기 위하여 나라에서 사원을 세우고 봄, 가을로 제사를 지냈다.이곳의 풍수 입지는 낙동정맥인 능동산(983m)에서 남서쪽으로 하나의 지맥을 뻗어 천황산(1,189m)을 일으키고 여기서 좌우로 팔을 벌려 감싸 안은 안쪽에 표충사가 위치하고 있다. 이 사찰의 주산은 재약산이고 여기서 남남서쪽으로 하나의 지맥이 뻗어 내려오다 넓게 퍼지면서 당판을 만들었다. 재약산의 원줄기는 동쪽, 동남, 남, 남서, 서쪽으로 사찰의 좌측에서부터 앞쪽을 완전히 감싸며 뻗어 나와 본 사찰의 안산인 향로봉을 일으키고, 또다시 계속 뻗어 나가다 사찰 좌우에서 흘러나오는 시전천을 만나면서 그 행로를 마쳤다. 그러므로 표충사는 양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장풍국(藏風局)이 형성된 오목한 와형의 형국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의 수세는 큰 산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기 때문에 사찰의 좌우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표충사를 환포하고 사찰 앞쪽에서 합수하여 제법 큰 하천(시전천)을 이룬다. 시전천은 계속 흐르다 밀양호에서 내려오는 단장천과 만나 삼랑진에서 낙동강에 합류한다. 사찰 좌우 계곡에는 각종 수구사들이 많고 계류들이 구곡수로 흘러 유속을 늦추어 주니 사찰 안쪽은 늘 생가가 가득하다. 풍수에서는 혈장 주변의 물길은 혈장을 환포 해주고 천천히 흘러나가는 것을 최고로 친다. 그러므로 표충사 주변의 수세는 용·호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물들이 사찰을 잘 감싸주고 흐르는 물속에는 유속을 늦추어 주는 각종 수구사들과 흐르는 형상들이 굽이굽이 구곡수로 흘러나가니 최고의 수세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풍수무전미(風水無全未)라 하여 풍수적으로 완전한 땅이란 없는 법, 이곳에도 풍수적 결함이 있는 곳에는 여러 가지 비보(裨補)를 하여 피해를 막고자 노력한 흔적들이 여러 곳에서 목격된다. 주산인 재약산에서 내려오는 중출맥이 길게 뻗어 내려오다 보니 대광전 바로 뒤의 배산이 낮아 건물 뒤쪽으로는 대나무 숲을 조성하여 비보를 하였고, 종무소 앞에 심어진 수령이 오래된 백매화 나무도 비보 차원에서 심어졌다. 대광전 우측에 세워진 삼층석탑과 종무소, 사천왕전 건물 역시 사찰 내부에서 경사진 사면으로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비보 차원의 건축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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