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죽음이 허망한 것처럼, 이기심이 허망한 것처럼, 미모라는 것, 청춘이라는 것, 뽐내고 다닌다는 것도 허망한 일에 불과한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바닷가에 가서 제일 재미있어 하는 것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노래 부르는 일일 것입니다. 이를 ‘캠프파이어’라고 하지요? 모닥불을 바라보면 참 아름답습니다. 토닥토닥하며 타는 소리도 좋고, 불꽃도 아름답고, 그 불빛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 더욱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캠프파이어라는 것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닥불도 이내 꺼집니다. 모닥불이 꺼질 때쯤이 되면 춤도 더 출 수 없고, 노래도 더 이 상 부를 수 없을 만큼 지칩니다. 즐거움도 그 순간에 다 멈추고 맙니다. 다시 모닥불을 피우고 더 놀고 싶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곧 새벽이 될 것이고, 새벽엔 모닥불 놀이도 재미없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아마 더 모닥불을 피우지 않는 것일 것입니다. 그렇게 밤새도록 놀고 나서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늦잠들을 잡니다. 그리고 부스스 일어나 라면으로 대충 배고픔만 때우고 짐을 챙겨 각자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다시 버스에서 혹은 기차 속에서 노래를 부르고 노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고개를 젖히고 잠을 잡니다. 집에 돌아오면 다시 지루한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그런데 이런 짧은 추억이라도 갖고 싶어서 유흥비를 벌기 위해 온갖 나쁜짓을 서슴지 않는 젊은이들도 있습니다. 소매치기를 하고, 좀도둑질을 하고, 심지어는 강도질과 매춘도 합니다. 해마다 우리가 보고 겪는 일들이 이처럼 추하기만 합니다. 헛되고 헛된 일에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들을 볼 때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율장’ 제49에 보면 “뼈와 뼈가 이어져힘줄과 맥이 서로 연결되고 정혈로 이 몸뚱이가 이어졌으니 이제는 이 육신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온갓 더러움을 싸고 있는 가죽주머니 숨을 돌이킬 사이도 없이 모든 구멍마다 더러움이 가득 찬 게 내몸이란 것 알았습니다. 어리석음과 무지 때문에 이 모든 더러움 알지 못하고 어리석음의 캄캄한 그늘에 덮였고 부질없는 집착임을 알았습니다. 성자여, 부디 저를 불쌍히 여기사 내려오소서. 더러움 떨처버리는 길을 닦을 수 있도록 제게 참다운 가르침을 주십시오. 저도 이제 티끌 같은 세상의 집착을 없애게 하여 주십시오.” 이는 청련화라고 하는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 자신의 욕된 행통을 부끄러워하며 참회하는 마음으로 외친 말입니다.아마 진심으로 자신이 얼마나 헛되게 인생을 살고 있는지를 반성하고 참회하는 사람이라면 청련화처럼 부질없는 집착을 버리고 참되게 사는 길을 알고 싶을 것입니다.공작새는 화려하지만 종달새처럼 높이 날아다닐 수도, 기러기처럼 멀리 날아갈 수도 없습니다. 돈이 많은 것, 남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것, 외모가 남보다 출중한 것이나, 겉모양이 화려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비록 겉모습은 남들보다 못하더라도 스스로 마음을 다스릴 줄 알고 마음을 잘 쓰는 사람이 번뇌를 여의고 죽는 날까지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기사굴산에 계실 때의 일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