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는 어느 곳에서 오며, 죽어서는 어디로 가는가. 태어난다는 것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나는 것과 같고 죽음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뜬구름 자체는 본래 실체가 없으니 태어나고 죽고 오고 가는 것도 또한 그러하네.」 인생 자체를 뜬구름에 비유하는 이 선시(禪詩)는 삶과 죽음에 대해 집착할 것도, 슬퍼하거나 괴로워할 것이 없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지(地)·수(水)·화(火)·풍(風)의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사람의 육신이 각각 그 네 가지로 흩어지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무상계(無常戒)에서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뼈와 살의 굳은 것은 흙으로 돌아가고, 피와 침 등 묽은 것은 물로 돌아가며, 몸속의 따뜻했던 기운은 불이 되어 돌아가고, 움직이던 힘 바탕은 바람으로 돌아가네. 사대가 각각으로 돌아가니 오늘 이 몸은 어디에 있는가. 사대는 허망하고 거짓된 모습이니 애석타 하지 마소.’ 죽음을 터부시하는 우리 사회는 화장(火葬)의 과정을 아예 못 보게 합니다. 아이들에게는 장례 절차조차 안 보이려 합니다. 그러나 죽음을 인생의 한 과정으로 바라보는 인도는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강가의 가트에서 장작을 쌓고 한 겹 천만을 덮은 채로 작대기로 시체를 뒤적여가며 화장을 합니다. 아이들은 그 화장터 옆에서 목욕하고 물장구를 치며 노는 현장을 TV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 시간대를 같이 살아가면서도 공간이 다르다는 이유로 어떤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릅니다. 어느 것이 옳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냥 문화의 차이로 바라볼 만큼 이해의 폭도 넓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삶과 죽음을 관조해보려는 의식도 강하게 일어납니다. 그런데 어떤 현상이 나의 상황이 되면 각자의 세계 속으로 돌아갑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계의 범주 안에서 사고하고 행동하지요. 그것이 인간입니다.살아있다가 죽는 것은 실로 한 호흡 사이입니다. 때로 삶과 죽음은 의사의 한마디 말로 결정됩니다. 눈을 뒤집어보고 심장의 박동을 확인하고 심폐기능의 정지를 확인한 순간 사망진단을 내립니다. 이렇게 죽음은 한순간 찾아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싫어합니다. 아마도 죽음 이후의 불확실한 미래 때문이겠지요. 죽음 뒤에 무엇이 있을까요? 윤회나 환생 또는 지옥과 극락의 사후세계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답을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지금 자신의 삶에 대한 확신이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지금 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하니 또다른 즐거움을 찾아 여행을 계획하며 그 여행지에서의 기대감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현재에 만족하는 사람은 다른 생각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현재를 즐기겠지요. 그리고 내일이 오면 그냥 또 현재를 삽니다. 시간이란 언제나 현재입니다. 현재가 지나가서 과거가 되고, 아직 오지 않은 현재가 미래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현재를 버려두고 과거에 집착하여 살거나 미래를 꿈꾸며 삽니다. 현재가 없는 삶은 늘 불안합니다. 고요하지 못한 거죠.죽음은 괴로움인가요, 죽으면 괴로울까요? 어떤 이는 편안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어떤 이는 마지막까지 괴로워합니다. 어떤 이는 고르게 숨을 쉬다가 숨을 멈추고 어떤 이는 숨을 몰아쉬다가 얼굴을 찡그리고 갑니다. 그런데 어쨌든 죽습니다. 죽음은 그냥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현상을 단지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은 ‘죽음’이라는 현상 앞에서 괴로움에 물들지 않습니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네 가지 괴로움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내 삶의 과정으로 수용할 것인가는 나의 결정에 달린 것입니다. 이 ‘나의 결정’이 매 순간 ‘나의 이 순간’의 니르바나(=열반, 평화, 고요)를 가져옵니다.林龍相 義士 略歷(임용상의사 약력)②우리 정부는 왜정 통감부에 압축되어 청송부에 진위대 二百名(이백명)을 파견하여 義兵(의병)을 탄압하고 청송부사를 宣諭使(선유사)로 겸임하여 선유하되 일본은 우리나라를 개명발달시키기 위하여 물자와 병력을 소모하여 우리 내정을 도우는데 義兵(의병)들은 그것을 모르고 저렇게 소요를 일으키니 도리어 우리의 개명발달에 방해만 될 뿐이고 지금 우리 청송고을에도 義兵(의병)만 해산되면 병정은 곧 해제될 것이라 하니 무지각한 백성들은 도리어 義兵(의병)을 원망하는지라 산남의진은 하는 수 없어 一時休兵(일시휴병)을 하게 된다. 公(공)은 이때에 향리에 돌아가지 않고 평소에 의지가 공통되는 동지 몇 사람을 더불고 영덕 靑蓮寺(청련사)를 근거지로 하고 義兵(의병)모집을 계속하여서 義士(의사) 八十餘名(팔십여명)을 단취하여 두고 公(공)은 倡義大將(창의대장)으로 추대되어서 사방동정을 살피고 진출할 시기를 기다렸다 丁未(정미) 四月(사월)에 山南(산남)본진이 다시 출발하는 정보를 받고 본진에 자주 연락을 취하여 본진이 동해방면에 도착할 때까지 동해방면을 확보하기로 약속하고 본진 大將(대장) 鄭鏞基(정용기)는 公(공)을 동해방면 遊擊將(유격장)으로 任命(임명)하더라 그해 七月(칠월)에 산남의진이 동해방면으로 진출할 때에 公(공)은 본진을 응원하여 청하읍을 함락시키고 부하를 인솔하고 본진에 입진하여 左將(좌포장)으로 任命(임명)을 받고 신령 청송 영천 등 각지를 진격할 때 진두에서 활약하였다 八月(팔월)하순에 자양에 침입한 왜적을 섬멸시키고 北上(북상)할 준비로 군복과 군수품 각종을 모집하기 위하여 각 부대들이 각지로 파견되고 본부는 죽장 등지에 주둔하여 각 파견된 부대들의 귀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公(공)은 일지부대를 인솔하고 청송 등지에 파견되어 임무를 취급하였다 九月(구월) 初一日(초일일) 밤에 죽장 立巖(입암)에서 본부가 왜적들과 교전되어 본부 대장단이 무너지고 참패를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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