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흐르는 물과 같아서 인위적인 장벽과 이념의 선으로도 결코 막은 수 없다.우리 민족의 DNA에 가운데 한(恨)이 담겨진 노래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최근 우리 영천은 잊힐 뻔했던 영천의 가락〈영천아리랑〉이 영천시 향토무형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되었다. 이는 단순한 지역 민요의 발굴을 넘어, 영천의 문화적 정체성의 확대를 선언과 같은 상징을 담고 있다.이 시점에 영천역사박물관은 일본에서 들어온 희귀 LP 레코드 한 장이 있다. 1970년대 일본 도쿄의 신세계(Shinsekai) 레코드사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의 주선으로 북한의 민족 음악을 담아 발매했던《조선민요선집(朝鮮民謠選集)》연작 음반이다. 제작구성으로 상(SC-5001)·중(SC-5002)·하(SC-5003) 권으로 구성 되어있다. 이 전집 가운데 한반도 전역의 가장 깊은 구전 음악들을 갈무리한 ‘하(下) 권’ 음반의 그루브(소리골) 사이에 우리의〈영천아리랑〉이 선명하게 아로새겨져 있었다. 턴테이블의 바늘이 회전판 위를 타고 흐르는 순간, 웅장한 배합 관현악의 선율과 함께 맑고 청아한 주체 발성(북한식 발성)이라고 불리우는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아롱아롱 아라리가 났네…”의 애절한 절창은 필자의 가슴을 세차게 때렸다. 분단의 벽에 가로막혀 정작 고향 땅에서는 숨죽이고 있던 영천의 소리가, 북한에서는 민족의 대표 전승 민요로 엄연히 살아 숨 쉬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역사적 증거물이었기 때문이다.〈영천아리랑〉이 남북 분단의 비극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아 우리에게 되돌아왔는지를 추적해 보면 실로 극적인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일제강점기 시절, 영천의 농민들과 실향민들은 생계를 위해, 혹은 독립의 염원을 품고 만주와 연해주, 중앙아시아 등지로 눈물의 이주를 감행했다. 고향을 떠난 그들의 봇짐 속에는 영천의 흙냄새와 함께 이 슬프고도 강인한 노래가 담겨 있었다. 해방 이후 이들 해외 동포들의 상당수가 북한 땅으로 귀환하거나 북한 체제와의 교류 속에 정착하면서,〈영천아리랑〉은 북한 예술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남한의 초기 민요 문헌인《조선民謠집성》(1948)이나 초기 국악 연구에서조차 누락되어 정작 고향에서는 잊혀가던 소리가, 북한에서는 보존 가치가 매우 높은 중요 민족 문화 자산으로 채록되어 이처럼 해외 수출용 LP 음반에까지 당당히 수록되었던 것이다.베일에 싸여 있던 이 소리가 우리 국민에게 처음으로 정체를 드러낸 결정적 계기는 역사적인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이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의 국립민족예술단이 환영 공연에서 이 노래를 불렀고 이를 지켜본 남측 문화계 인사들과 언론에 의해 “북한에 조선민요로 전승되던 아리랑이 알고 보니 경북 영천의 향토 아리랑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보고되었다. 평양 하늘에 울려 퍼진 영천의 가락은 남과 북이 이념적으로는 갈라졌을지언정, 문화적·혈통적으로 결코 끊어질 수 없는 하나의 공동체임을 깨닫게 해 준 평화와 화합의 메신저였다.이번에 영천역사박물관 구입한 《조선민요선집》LP 음반은 단순한 골동품이 아니다. 만주벌판을 유랑하던 영천 유민들의 한숨과, 평양 예술단의 세련된 편곡, 그리고 일본 신세계 레코드라는 우회 경로를 거쳐 반세기 만에 마침내 고향 영천의 품으로 돌아온 ‘소리의 귀환’을 상징하는 최고의 역사적 텍스트다. 이 가녀린 레코드판의 플라스틱 회전체가 견뎌낸 시간의 무게는 곧 우리가 복원해야 할 영천 문화의 크기이기도 하다.〈영천아리랑〉의 향토유형문화유산 1호 지정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우리는 이제 이 LP 음반 속에 박제된 평양의 소리, 만주의 소리를 영천의 미래를 열어갈 살아있는 문화 콘텐츠로 부활시켜야 한다. 모쪼록 마주한 이 작은 LP 음반 한 장이, 영천 시민들에게 고향의 위대한 문화적 자산을 재발견하고 영천의 문화의 다양성을 일깨우는 귀중한 불씨가 되기를 소망한다.
즐겨찾기+ 최종편집: 2026-07-04 18:56:34 회원가입 전체기사보기 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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