夏至(하지)가 지나갔다. 이제까지 길어지던 낮이 동 지까지 줄어든다. 무상(無常)이다. 이 세상 모든 현상이 항상(恒常)하지 않아 무상이다. 계절은 우리에게 이렇듯 진리의 세계를 보여준다. 아니, 그냥 흐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이리 집착할 것이 많은가. 끝없는 욕망을 일으켜 거기에 집착하니 괴로움을 스스로 불러들이는 중생이다. 무더운 날씨 탓할 것 없이 그늘에 앉아 무상(無常)의 도리를 살펴볼 만하다. 스스로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박동림자는 치서이고, 본관은 밀양이며, 호조판서 송월당의 11세손이다. 대 대로 흥해 호리(虎里)에서 살았으 며 서기 1873년 계유에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빼어난 재능이 보 통 사람들과 다름이 있었다. 산남 의진에 들어온 이후 종사(從事)의 임무로서 각 지역에 출몰하면서 자 일을 잘못 처리하여 여러 사람들 의 칭찬이 자자하였다. 서기 1908년 무신 (음력)3월 5 일에 최세한 대장을 따라 지포 이 한구를 호소(縞素)의 예로 장례식 을 거행하였다. 그 뒤 적의 기밀을 탐지하기 위하여 혼자 죽장의 구 유곡으로 갔다가 적진을 만나 순 사(殉死)하였는데, 그의 동생인 동만이 형의 시신을 염습하여 집으로 돌아와 신광의 만석산에 장례하였다. 〈원문〉 朴東淋은 字致瑞요 密陽人이라 戶判松月 堂十一世孫也라 世居興海虎里하다 癸酉生 이라 生有英才超衆하야 入陣以後從事之任 으로 出沒各地하야 頗有衆讚이런이 戊申三 月初五日에 從崔大將하야 擧芝圃李公縞素 之葬禮하고 以探機之事로 獨行於竹長九儒 谷이라가 遇敵陣하야 殉死하니 其弟東萬이 斂襲而歸하야 葬於神光萬石山하다.<山南倡義誌 卷下42~43p>朴東淋 義士 略歷(박동림 의사 약력)朴東淋(박동림)은 字(자)는 致瑞 (치서)이오 貫鄕(관향)은 密陽(밀 양)이라 戶曹判書(호조판서) 號(호) 松月堂(송월당)의 十一世孫(십일세손)이오 興海 虎里(흥해 호리)에 世居(세거)하였다 癸酉生(계유생)이라 性稟(성품)이 溫厚(온후)하고 學 識(학식)이 풍부하였다 그의 所能 (소능)이 남을 이해를 잘 시켰다 그러므로 항상 각지로 獨行(독행)하 여 정보를 수집하고 대중을 遊說(유 세)하였다 戊申 三月五日(무신 3월 5일)에 竹長 九儒谷(죽장 구유곡)에 서 敵銃(적총)에 殉節(순절)하다 그 의 親弟(친제) 東萬(동만)이 兄(형) 의 遺體(유체)를 神光 萬石山(신광 만석산)에 매장하다.<山南義陣遺史460p>공훈전자사료관 공훈록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외교권이 박탈당하자 전국의 의병들은 항일 투쟁의 기치를 내걸고 의병운동을 전개했다. 1906년 3월 경상북도 영천‧청송‧영일을 중심으로 정조충래전원생활체험학교장 본보 논설주간 용기(鄭鏞基)‧정환직(鄭煥直) 의 병장이 산남의진을 이끌었다. 박 동림은 이러한 산남의진에 합류 하여 종사의 임무를 담당하였다. 1907년 8월 대한제국 군대가 일 본에 의해 강제 해산당하면서 많은 해산 군인이 의병부대에 투신했다. 그 결과 의병의 훈련과 장비 가 크게 향상되어 의병운동이 정 규군 간의 전투인 의병 전쟁의 단계로 진입했다. 그 과정에서 정용 기와 정환직 등이 순국하자 최세윤(崔世允)이 산남의진을 이끌었 다. 박동림도 이어서 최세윤 의병 부대에 합류했다. 일제 헌병대 등 에 대한 정보를 수집 임무를 수행하다가 1908년 음력 3월 초 일본군에게 피살당하여 순국했다. 정부 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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