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그것도 무인식당을. 불교가 시내로 진출한 것이다. 영천시 완산동 무인셀프식당인 씨래기해장국 집을 운영하는 고경면 약사암 지성스님이 그 주인공.주인없이 운영되면서 1인분 3천원이란 저렴한 가격이 특징인 이 식당은 자칫 아침을 거르기 쉬운 현대인들에게 인기만점이다. 또 직접 농사지은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는 건강식으로도 이름나 있다. 이곳에 가면 씨래기국밥 한그릇의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지난해 8월31일 개업 이후 매일 새벽에 나와서 씨래기국을 한솥 끓여놓고는 사찰 일보러 나간다는 지성스님을 만난 것은 7월10일 낮 12시 영천역앞 바로 그 식당에서다.미리 약속하지 않으면 식당에서 만날 수 없다는 지성스님은 “사찰의 공양(供養;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국어사전)관을 차린다는 마음에서 식당을 열었다”고 말문을 연다. “대로변에서 10리(4Km)를 걸어 들어와야 하는 약사암을 찾아오는 사람 숫자가 불확실해서 매일 공양을 하지 못하다가 시내에 공양관을 차린 것”이라고.“사찰의 공양이라는 차원에서 큰 욕심내지 않았던 것이 무인식당을 낼 수 있었던 배경”이라고 덧붙이는 지성스님은 “영천사람들이 이렇게 질서를 잘 지킬 줄 몰랐습니다. 주인없는 식당을 찾아온 손님들이 스스로 국과 밥, 반찬을 차려 먹고는 자발적으로 돈을 내고 가는 자체가 영천인의 수준을 가늠케 한다”며 지역민들의 협조에 감사해했다.국민은행 오거리에서 영천역 가는 도로 즉 전화국(KT)에서 영천역 가는 길로 50m쯤 가다 왼쪽 도로변에 위치한 이 식당은 ‘24시간 영업 아침식사됩니다’란 현수막과 함께 ‘웰빙 무인셀프식당, 3.000원, 씨래기해장국-약사암신도회 후원 막퍼주는 식당’이라 적혀있는 간판이 붙어 있다.식당 이용방법은 ‘주인없는 식당입니다’란 안내문과 함께 내걸려있는 ‘무인셀프식당 이용방법’대로 손님 스스로 국과 밥, 반찬을 먹을만큼 그릇에 담아 먹으면 된다. 식탁에 놔둔 날계란을 곁들여도 좋다. 식사를 마치고는 잔반처리후 식기들을 설거지싱크대에 담가두면 된다. 1인분 3천원을 전화기옆에 비치된 돈통에 넣으면 끝이다. 3천원이란 저렴한 가격이 매력이다.식당안에는 무말랭이, 고추말랭이, 대추 등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따로따로 봉지에 넣어 3천원씩에 판매하고 있는데 대추의 경우 일찍 품절된다고.“이른 아침에는 새벽 열차 이용객이나 운동하는 사람, 자칫 아침을 거르기 쉬운 바쁜 손님들이 줄을 설 정도로 붐빈다”는 이 식당은 “손님의 80%가 새벽손님”이라는 것.“하루 평균 매출이 15~17만원이지만 설이나 추석 명절때는 30만원까지 매출이 오른다”는 지성스님은 “주요재료인 씨래기는 약사암 인근 고경면 단포리에서 생산한 무청과 배추를 섞어서 만들고 불자들과 함께 직접 농사지은 신선한 재료로 각종 반찬을 만들기에 맛있다”고 자랑한다.특히 ‘씨래기해장국은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진 건강식’으로 알려져 있어 “실제로 변비에다 혈압 당뇨 혈관질환 등 각종 성인병을 앓는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매일 찾는 이들이 있다”는 것. 식당안에 내걸린 ‘씨래기해장국은 보약’이란 안내문에는 ‘씨래기된장국은 무청과 배추 씨래기에다 천연맛을 내는 된장과 함께 끓여져 고혈압, 동맥경화 등 각종 혈관병을 미연에 방지한다. 또 풍부한 식이섬유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감소시키고 변비에도 좋은 효과가 있으며, 빈혈에 좋은 칼슘은 노화방지와 뼈에 각각 효과가 있다’는 것. 지난해 10월25일에는 SBS-TV에 소개되기도 했던 이 식당은 인근 지역 공무원들이 견학 올 정도로 유명한 식당이 됐다. 경주시청 공무원들은 “영천사람들이 정말 훌륭하다”며 다녀갔고 울산, 대전 등지서 찾아오는 등 타지에서도 찾아오는 유명식당이 됐다.지성스님은 “그냥 가마솥에 씨래기국이 가득차면 하루 분량”이라며 “한가마솥 양과 하루 판매량이 딱 맞아 떨어진다”는 1년 가까운 경험담을 들려준다. 이 식당을 통해서 영천시민들의 성숙한 질서의식을 엿볼 수 있어 놀랍다. 개업 초기 약간의 혼란스러움이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기가 먹은 식탁을 스스로 물티슈로 잘 닦아놓고 깨끗이 치우고 가는 질서의식이 돋보인다. 약사암 신도회원들도 수시로 찾아와 식당을 정리하고 찬거리도 갖고오는 등 봉사자로 나서고 있다. 그래서 무인식당이지만 아주 깨끗하게 운영되고 있다. 음식뿐아니라 돈통도 드러나 있지만 두어달 전까지는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 간혹 돈이 필요해서 가져간 사람은 종이에 적어놓고 갔다. 그런데 최근 노숙자들이 손대고 난 뒤 신도들이 나서서 CC-TV를 설치했다. 설치후에도 장비를 들고 와 돈통에 손대는 장면이 그대로 찍혔지만 경찰에 고소할 지 고민이다. 공양하는 차원에서 개업한 식당이라 그렇다.“주인 없이 1년 가까이 별탈없이 식당이 운영되는 것은 오로지 지역민들의 협조 덕분”이라며 감사해 하는 스님은 간단한 인터뷰를 마치고는 급히 과실주 및 천연발효식초 교육과정 수료식 참석차 급히 식당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