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가에는 잡풀이 무성하고, 수 십 년간 방치되면서 마루와 구들장은 누군가 뜯어가 버린 채 집은 무너져 폐허로 변해 있고…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을 생각하기에도 부끄럽고 죄스럽습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답사한 백학학원과 순국선열 이원대 열사 생가에는 잡풀만 무성한 채 관리가 안 되는 등 방치되고 있다.
‘청포도’, ‘황야’의 시인 이육사가 학생으로 공부하다 교편을 잡아 후학을 길렀으며 조재만, 안병철, 이진영 등 여러 애국지사를 배출한 ‘백학학원’의 현주소다. 이곳은 국가 현충 시설로 지정돼 있다. 백학학원 건물 대부분이 무너진 채 방치되고 있어 복원이 시급한 실정이다. 구한말 의병과 독립운동가의 역사유적들을 체계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폐가로 방치되고 있는 백학학원에는 대들보와 서까래 등이 버려진 채 잡초로 에워싸고 있다. 자두나무 밭 주변에 폐가로 방치되고 있는 백학학원의 천정은 물론 흙벽과 대들보도 대부분 붕괴된 채 보기 흉한 모습이다.
이 마을에 거주하는 박모씨(75)는 “어릴 때 이곳 백학학원에는 사람이 거주했는데 수십년간 방치되면서 폐허가 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영천시 화남면 안천리 백학학원은 임진왜란 전인 1555년 영천시 화산면에 설립된 백학서당이 뿌리다. 임란때 소실됐다가 중건돼 1658년 현재의 자리에 옮겼다. 1678년 서원으로 승격됐다가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헐렸으며, 1900년 서당으로 복원됐다.
화북면 오산리 순국선열 이원대 열사 생가. 생가는 녹슨 철대문과 마당에는 잡초만 무성하게 우거진 채 방치되고 있다.
허물어 질 듯한 시멘트 담장에, 별채 처마는 지붕이 무너질까 나무로 떠 받쳐져 있는 생가는 유지 관리가 전혀 되지 않고 있다.
이원대 열사는 백학학원을 거쳐 자천보통학교와 영천농업보습학교를 졸업하고 1933년 인근마을 이진영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이 열사는 중국 호남성, 호북성, 강서성과 신서성, 하북성 변경의 태항산 일대를 중심으로 수십 차례 대일 전투에 참가해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42년 조선의용대 분대장에 임명된 이 열사는 석가장 일대를 중심으로 대일 무장투쟁과 대원모집 활동을 전개하던 중 일본군에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1943년 6월17일 북경 일본군 헌병대에서 총살형으로 순국했다. 1977년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열사의 공적을 기리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