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에서 창설된 예수성심시녀회(총원장 이광옥 수녀)가 설립 80주년을 맞아 지난 12일 예수성심시녀회 총원 성당에서 기념미사와 행사를 갖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수도회 창립 정신 실현에 매진키로 했다.
대구·경북 지역의 대표적인 수도회인 예수성심시녀회는 1935년 파리외방전교회 루이 델랑드 신부(한국명 남대영, 1895~1972)가 동정녀 6명과 함께 영천 화산에서 공동생활을 시작하면서 첫 발을 내디뎠다.영천서 예수성심시녀회 창설사회복지시설인 영천 나자렛마을과 포항성모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예수성심시녀회라는 수녀회 창설자인 남신부는 1934년 5월5일 영천 화산에 있던 천주교 용평성당 3대 주임신부로 발령받고 이듬해인 1935년에 수녀회 창설과 함께, 영천읍 과전동에 공소(신부가 없는 성당)를 설립함으로써 지금의 영천시내 천주교 역사를 실제적으로 시작한 장본인이다. 이에 본지는 수녀회가 펴낸 책자를 통해 남대영 신부의 삶과 영성을 돌아본다.
영천성당 제2대 주임신부(1940~1950년)이기도 한 남 신부는 해방직후 영천에서의 10.1사건(1946년)에도 적극 개입해, 억울한 희생자를 살려내기도 했다. ‘10.1사건’ 한 가운데 서다1947년 3월5일 영천성당 신부로 있을 때 동료신부에게 보낸 편지글에서 남 신부는 “...그 분이 떠난후, 무엇보다도 이곳(영천)에서 심각한 민중사건이 발생했습니다. 20여명의 경찰관들이 암살된 데 대한 처벌로 40여명의 사람들이 재판도 받지 않고 학살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미국인들이 개입해서 재판이 행해졌으며, 저는 다섯달동안 바로 그 미국인 재판관에게 숙소를 제공했습니다. 고아원(30명 이상의 남녀 아이들이 있는), 불구자들과 노파들, 한국인 동정녀들(현재 17명)의 공동체를 돌보는 제 임무에, 타당한 이유도 없이 용의자로 지목된 불행한 사람들을 옹호하기 위한 속세의 일들이 추가되었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1947년 8월10일 어느 수녀님께 보낸 편지에서도 남 신부는 “....제가 있는 마을(영천)에서의 10월 민중폭동 때에 양 진영에서 1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났습니다. 제가 대담하게 감옥에 침투해서 중재하지 않았었다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었을 겁니다...”라고 적고 있다. (루이 델랑드 신부의 편지 모음집 < 맨 끝자리에 앉으시오 Ⅱ > 중에서).프랑스로 돌아가지 않고, 1972년 포항에서 선종「365, 언제나 희망 속에서 : 루이 델랑드 신부와 함께하는 매일의 묵상」이라는 남 신부 어록집의 서문을 쓴 박휘택씨는 “한국의 대표적 수도회 중의 하나인 예수성심시녀회(1935년 설립)와 한국사회복지의 원형이라 할 사회복지법인 성모자애원(1936년 설립)의 설립자이신 신부님은, 프랑스 노르망디지방 파리니에서 1895년 태어나 1922년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일제강점기인 1923년 부산항에 도착하여 반세기를 오로지 이 땅의 목숨들을 위해 헌신하시다가, 모국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고 1972년 경북 포항에서 선종하시어 새로운 모국 한국의 포항땅에 여전히 머물고 계십니다”라고 추모했다.이 땅 최대의 사회복지현장불자인 박휘택씨는 “오늘날 포스코 터전이 된 포항 송정리 바닷가 신부님의 자애공동체에는 1968년 포항제철에 자리를 양보하는 시점에 18만 평에 걸쳐 35개 이상의 건물에 8백 여명의 가족들이 살아가고 있었고, 신부님은 당신의 딸들인 수녀님들과 함께 이들을 한 가족애로 살뜰하게 보살폈습니다. 당시 이 땅 최대의 사회복지현장인 이 공동체에는 자연스레 장면 총리(1960년 10월 9일), 육영수 여사(1965년 6월 16일) 등의 방문이 이어졌고, 한국정부는 1962년 문화훈장 국민장으로, 프랑스 정부는 1969년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장으로 신부님의 은덕을 기려 주었다”며 2013년 ‘포항을 빛낸 인물 제6호’로 선정되기도 했다는 사실도 밝혔다. 영성과 자애의 거인박씨는 또 “신부님은 칠흑 같은 일제강점기 조선사회와 가도 가도 황톳길인 해방 이후의 한국사회에 희망의 싹을 틔우신 분입니다. 따라서 신부님의 영성의 한 특질을 ‘희망의 영성’이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에 이르러 세계의 찬사를 받는 대한민국이 된 것도 사실이지만, 높은 자살률과 청년세대의 좌절, 노인세대의 우울과 70년째 대립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분단현실 앞에 우리는 새로운 희망을 노래해야 합니다. 예수성심시녀회 설립80주년(2015년)을 앞두고 3개 영역, 18개 사업을 기념사업으로 체계화하여 설립자 신부님을 조명하고, 수도회의 카리스마를 심화하며, 시민사회와의 열린 나눔을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365, 언제나 희망 속에서 : 루이 델랑드 신부와 함께하는 매일의 묵상」은 이들 기념사업의 하나로서 열린 나눔을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영성과 자애의 거인’ 남대영 루이 델랑드 신부님의 생생한 육성을 통해 시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사회복지학을 강의하면서 남대영 루이 델랑드 신부님의 거룩한 삶을 인지하고서 존념(尊念)을 가져오던 저는, 시간 나는 대로 신부님의 자취를 답사하는 한편, 성모자애원 이사 역임을 전후하여 신부님을 조명하는 일에 작은 정성을 보태어 왔습니다. 이 말씀을 엮는 작업도 같은 맥락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성심시녀회가 ‘열린 수도회’이기에 연기론에 귀의하는 저에게도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허여(許與)해 주셨습니다. 총원장 수녀님을 비롯한 수도회 모든 수녀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적고 있다.대구에 80주년기념, 남대영기념관 개관예수성심시녀회는 지난 12일 천주교 대구대교구 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를 비롯한 성직자, 수도자 등 1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미사를 봉헌했으며 이에 앞서 설립 80주년을 기념해 지난 3월 개관한 남대영 기념관에서 80주년 기념전시 개막 행사를 가졌다. 예수성심시녀회는 이날 미사 참석자들에게 최근 새로 펴낸 남대영 신부 어록집을 배포했다. 또 이달 8~14일 대구 앞산카페거리 인근 남대영기념관에서 남대영 신부 유물 전시회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