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프로포즈는 참으로 기발했다. 말수가 적다는 것에 호감을 느껴 다가간 나를, 레스토랑 아프리카에 예약을 하고 불러냈다. 남편의 서프라이즈를 물론 감지했다. 가령 아프리카에서 만나자는 약속부터 수상했다. 턱없이 비싸, 웬만한 월급쟁이 보름치가 한 끼 식사로 날아가니 그림에 떡일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아프리카에 다녀왔다는 것은 곧 결혼과 이어지는 커플을 종종보곤 했다. 연인사이로 결혼하기 전, 밤을 보내며 쉽게 결정하지 못한 이유 중에 하나가 나이 차이였다. 여섯 살은 사실 부담스러웠다. 남자와 여자로, 오직 이성간에 간격으로 다가와야 하는데 항상 “어린놈이”라는 걸림돌이 깔려있었다. 앞으로나란히와 한쪽 팔을 올리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초등학교 일학년이 남편이라면, 같은 시간에 짝꿍과 초경과 동영상을 화제꺼리로 삼는 어엿한 육학년과 차이는 하늘과 땅이었다. 육학년의 눈높이로 바라본 일학년은 오리, 괙괙으로 발맞추던 그냥 노란 병아리였다. 그런 남편이 내 몸 위에서 떨어져나가며 물 달라는 둥, 라면 먹고 싶다는 둥 우위를 점하기 위해 세력 확장을 꾀하고 있었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고 그럴 수도 있다고 했고 그까짓 것 했는데 약간의 개운치 않은 면은 숨길 수 없었다. 어쨌든 무리 없이 시중을 드는 나를 확실히 찜하기 위해 아프리카를 선택한 것 같다.
아프리카로 가는 아침. 맞춰둔 모닝콜보다 일찍 일어나 샤워를 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자신감으로 빵빵했다. 어디 내놓아도 주눅 들지 않는 몸매였다. 남편의 장점은 무슨 말을 하든 묵묵히 들어주는 모습이 예뻐 보였다. 이야기의 고저장단에 상관없이 평온한 얼굴로. 다시 생각해보면 관심 없거나 딴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남편에 대한 좋은 기억을 꼽으라면 귀를 내내 열어놓고 있다는 점이다. 풍향계의 바늘 끝은 늘 바람 반대방향에 맞춰져있듯, 남편은 내 동선의 끝에 묵묵히 앉아 있었다. 이야기와 움직임과 결정권은 80의 점유율이 나라면, 남편은 20을 배당해도 약간 아쉬운 모양새가 우리의 풍경이었다. 그만큼 배려라고 남편은 표현했지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달인처럼 가부좌를 좋아했다. 한때 요가를 배운 습성이라나. 뭐라나. 너무 그렇게 앉아있으면 무릎관절에도 좋지 않고 화장하면 사리 나온다고 엄포를 놓아도 남편은 변함이 없었다.
왠지 그전보다 더 꼼꼼히 씻어야 될 것 같았다. 의식 같은 걸까. 아프리카가 주는 뉘앙스는 큰 그림 안에 약속이라는 전제가 느껴졌다. 비누칠을 하고 구석구석 문지르고, 샤워기로 구석구석 헹궈내고, 이태리타월을 잡은 손이 구석구석 닿고, 다시 샤워기로 구석구석 마무리 했을 때 나는 제단에 받쳐도 흠잡을 것 없는 처녀가 된 것 같았다. 뽀송뽀송 참 좋다, 광고 문구가 생각날 정도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얼굴에 젖은 머리카락이 몇 올 닿을 때 삼푸향이 은은하게 풍겼다. 다 둑었쓰. 이 죽일 놈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솟구치는지 알 수 없지만 혀 짧은 소리까지 튀어나왔다. 어쩌면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내심 남편의 자리에 올려놓았을 때 부족함이 보여 망설였지만, 다른 사람에게 없는 장점을 단점으로 대처하면 그다지 평균점수는 무난하지 않을까. -계속